※ 본 연구 페이지는 2025-1 문화기술지 수업에서 진행한 연구 내용을 요약, 재배열한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동포 간병인이 우리 곁에서 먹고 자며 우리를 돌보는 동안에도 이들의 노동이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중국동포 간병인은 때로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이들의 노동은 그 전문성을 의심받기도 하며, 한국과 중국의 경계를 교란하는 불편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병동 안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는 이들의 분투는 이렇게 지워집니다.
돌봄노동은 장기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수반하며, 타인의 삶 안에 들어가 그 일상을 가능하도록 한다는 면에서 노동현장이 노동자의 생활세계와 완전히 분리되기 어려운 성격을 띱니다. 돌봄노동자들은 노동시간 외에도 돌봄대상을 걱정하며 마음을 쓰고 추가적인 노동을 수행하여 스스로를 착취하기도 합니다. 삶과 노동이 분리되지 않는 돌봄현장에서, 돌봄노동자는 돌봄과 이를 행하는 스스로를 인식할 것입니다.
젠더화된 노동분업 구조에서 돌봄노동은 언제나 여성의 전유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여성이라면 당연히 돌봄노동을 수행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한다고 인식되어 왔고, 지금까지 가정 내에서 무급으로 해왔기에 노동에 요구되는 능력 및 기술과 사회적 중요성은 쉽게 간과됩니다. 오늘날 '이주의 여성화' 역시 돌봄노동의 성별화된 특성과 연관되어 있으며, 지구화시대의 돌봄노동은 같은 여성 내에서도 인종/민족적으로 더 주변화된 집단의 일이 되었습니다. 한편 간병현장에서 남성 간병인에 대한 수요는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남성간병인은 여성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노동을 규정하고, 여성간병인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젠더를 인식할 것입니다.
중국동포 이주민의 삶은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단일한 핏줄과 문화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중국동포의 이중의 정체성은 한중 양국 모두로부터 배제되고, 그들의 삶이 부정당하는 결과를 낳곤 합니다. 이주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며, 중국동포 간병인들에게 이주는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과정입니다. 이주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회인 동시에, 제도적·사회적 배제와 타자화를 경험하는 계기입니다. 이러한 모순적인 현실에서 이주는 단순한 물리적 이동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 관계망, 노동조건, 그리고 일상적 삶의 방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연구질문을 만들었습니다.
돌봄과 젠더, 이주가 교차하는 ‘중국동포 간병인은 젠더와 이주가 교차하는 생활세계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가?’
첫째, 중국동포 간병인의 이주 배경은 어떻게 중첩된 위치성을 만들고, 이들의 위치성은 어떻게 생활세계에 영향을 미치는가?
둘째, 중국동포 간병인에게 간병노동은 어떤 의미인가?
셋째, 중국동포 간병인의 젠더는 간병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연구참여자 목록
참여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인터뷰의 목적과 취지, 개인정보 이용 요령 등을 미리 고지했습니다.
중심연구참여자 소개
김성환(남, 70세)
연변자치구 훈춘시에서 농사를 짓던 김성환은 2014년 일자리를 찾아 방문취업(H-2)비자로 한국에 입국했다. 입국 이후 재외동포(F-4)비자로 전환했다. 원래는 건설현장 일을 하려고 했으나, 4-5개월만에 위질환이 발병하여 현장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중국에서 원래 알던 친구를 통해 중국동포 간병인 알선업체인 나눔협회를 소개받아 간병일을 시작했다. 간병일은 건설현장 일보다 임금은 낮지만 덜 힘들고, 계절이나 경기에 상관없이 꾸준히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김성환은 한 병원에서 일이 힘들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도 했다. 강원도 등 국내 여러 군데 병원에서 일을 하다가, 현재는 일산에 살며 명지병원에서 간병일을 하고 있다. 월요일마다 김성환이 속한 나눔협회의 실장이 병원에 와서 협회 소속 간병인을 점검/교육한다. 김성환은 나눔협회에 속한 간병인들과는 오다가다 인사를 하며 지내지만 다른 협회 간병인들은 잘 모른다. 맡았던 환자가 퇴원을 하면 2-3일 정도 쉬다가 다시 협회에 전화를 해서 환자를 소개받아 일을 한다. 쉴 때 가끔 친구들을 만나는데, 주로 고향에서 원래 알고 지내다가 한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김성환이 입국한 후 5년 뒤에 아내도 한국으로 이주했다. 김성환은 ‘나이��� 70 몇이 되니까 간병인밖에 할 게 있어?’라며 아내에게 간병일을 추천했다. 김성환의 가족은 상해에 거주하는 큰딸을 제외하고 모두 한국에 있다. 아내는 다른 병원에서 간병일을 하고, 둘째딸은 중국동포 밀집지인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산다. 가끔 손주를 봐준다.
최보윤(여, 60대 초반)
연변호구로 태어나, 젊었을 때는 천진에 있는 한국계 에어컨기업에서 회계로 일했다. 당시 기업 관리자였던 남편과 사이에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큰 아들은 심장병이 있었다. 최보윤은 20여년간 청도에서 한국기업과 무역업을 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아들을 돌봤다. 심장병을 오래 앓던 큰아들은 2021년 세상을 떠났다. 중국 건강보험 시스템이 없을 때라 아들의 치료비용을 온전히 부담해야 했다. 시어머니와 가족에게 사드렸던 집을 다 팔아서 수술비를 댔다. 최보윤��� 아들의 사망 후 2022년에 ‘내 세상 살아보자’며 한국으로 이주했다. 자신의 친구와 올케의 동창으로부터 이주에 관한 정보를 얻어, 오빠 부부와 함께 이주했다. 한국에서는 중국어교사로 일하고 싶어 책을 가져왔으나, 60대의 자신을 교사로 고용하는 곳이 없어 간병일을 구했다. 간병 경력이 있던 올케의 친구에게 간병일을 배웠다. 사당에 있는 요양병원의 간호간병통합병동(환자: 간병인 6:1)에서 일하다가, 남편의 이주 후 친구를 따라 나눔협회로 옮겼다. 49세에 혈전이 생긴 남편의 건강이 안 좋아져, 때때로 최보윤이 휴가를 내고 남편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2023년 5월 한국으로 이주했고, 2025년 4월 건강문제로 은퇴했다. 남편은 다리가 불편하고 언어장애가 생겼으며,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정신이 온전치 않아 길을 잃어 최보윤이 남편을 찾으러 나간 것도 몇 번이다. 현재는 대림동에 살면서 나눔협회 소속으로 명지병원에서 간병일을 하고 있다. 보통 두 주씩 일을 하고 2-3일 정도 쉬는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언제 퇴원할지가 정해지고, 그에 따라 스케줄이 바뀐다. 큰아들의 투병 경험이 최보윤의 간병노동에서 중요한 원칙을 형성했다. 2년정도 한국인들에게 아들의 치료비 후원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그 마음을 베풀고 싶다. 환자를 잘 봐달라고 간호사들에게 돈을 찔러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형편이 안 돼서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간병비 외에 보호자들이 주는 돈은 일절 받지 않는다. 부부는 연금이 있어 중국에서 먹고살기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환율차이가 크기 때문에 한국에서 돈을 벌어 한국에서 쓰는 게 낫고, 한국이 더 조용하고 살기 좋다고 한다. 사회보장도 잘 되어 있고. 쉬는 시간에는 영어공부도 하고 중국주식에 투자도 한다.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 10개 나라를 여행하는 게 목표다. 작년에는 제주도에, 올해는 일본에 갔다. 한국에 있는 조카들(오빠 딸, 큰언니 아들)과 왕래가 잦다. 작은 아들은 중국 서남민족대학 졸업반이며, 대학원 진학을 희망한다. 최보윤은 아들이 한국대학에 왔으면 좋겠다.
본 연구는 중국동포 남성간병인이라는 연구참여자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연구기간은 짧았고 남성간병인의 수는 적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긁어모은 10개 넘는 간병협회 이메일 중 어떤 곳에서도 회신이 오지 않았고, 간병협회가 이미 사업을 접었거나 번호를 지운 곳도 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주민 대상 복지단체, 인권단체, 중국동포교회 등 이주의 중위구조 역할을 하는 곳들에 연락을 취했는데, 중국동포들 간의 커뮤니티나 교회 등은 이미 번호가 없어진 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단체를 이끌던 이주민 당사자가 중국으로 돌아가거나 사정이 생기는 경우 커뮤니티가 사라지고 교회가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겨우 연락이 닿은 경우에도, 환자가 퇴원하지 않으면 시간을 내기 어려운 간병노동의 특성상 인터뷰 일정을 잡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간병인들은 한 환자가 입원하면 그 환자가 퇴원할 때까지 24시간 상주하며 간병을 하는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언제 퇴원할지가 정해집니다. 맡았던 환자가 퇴원하면 그나마 2~3일 정도의 휴식시간이 생기는데, 안호영에 따르면 ‘일할 때 먹을 반찬만 만들어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심지어 간호간병통합병동 등에 근무하는 요양병원 간병인들은 사실상 휴일 자체가 없습니다. 이양수는 이주 후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된 휴가를 가진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중국동포 간병인 커뮤니티 실장을 통해 소개받은 A은 대면으로 만나기 어렵다고 하여 유선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약속시간 직전에 미루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또 다른 커뮤니티 임원을 통해 소개받은 B는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인터뷰하러 자리를 비우면 학생들이 대근비를 줄 거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A, B와의 인터뷰는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연구참여자와의 인터뷰가 성사된 경우는 주로 사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경우였습니다. 경기 북부 모 병원에서 근무하는 연구자의 가족을 통해 해당 병원의 ‘ㄴ’간병협회 실장과 연락이 닿았고, 그를 통해 연구참여자 김성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같은 실장을 통해 연구참여자 안호영과 최보윤을 만났습니다. 연구자의 가족의 담당 간병인이었던 김영배를 만났고, 옆 병실 간병인 이양수가 김영배와의 인터뷰에 관심을 보여 이양수와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김은혜는 중국동포 간병인 커뮤니티의 임원을 맡고 있어, 홈페이지를 통해 연락이 닿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김영배, 이양수는 근무 중인 병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환자와 간호사, 다른 간병인이 오가고 인터뷰 중 환자 처치를 해야 하는 어수선하고 경직된 분위기에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김성환은 일터 근처의 카페에서 만남이 이루어졌으나, 근무 중 잠깐 시간을 빼서 나온 것이었기에 여유있게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또한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을 뿐더러 평소 말 자체를 많이 하지 않는 중국동포 남성이 나이대도 성별도 국적도 다른 연구자들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안호영은 ‘오늘은 간병협회 실장이 오지 않아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며, 쉬는 시간을 잠깐 빼서 인터뷰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김은혜(입주 장애인활동보조사)는 건넌방에 그가 돌보는 환자가 자고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최보윤과의 인터뷰 도중에는 거동이 불편한 남편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습니다.
그들이 인터뷰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 연구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각기 달랐습니다. 김성환은 인터뷰 전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면담을 해야 하냐’며 경계심을 드러냈습니다. 김영배는 간호사가 있을 때는 간병일이 괜찮다고 말하다가, 간호사가 자리를 뜨자 너무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안호영은 ‘간병인의 식사 얘기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김은혜는 이미 한 차례 이러한 인터뷰의 경험이 있었다고 했고, 무엇이든 물어보라며 익숙하게 인터뷰에 임했습니다. 최보윤은 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구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이러한 엇갈림들은 그 자체로 간병인들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김영배의 이중적인 태도는 간병 현장에서 중국동포 남성간병인의 위치성을 관찰하는 기회였고, 김성환의 경계심은 그를 아는 다른 간병인(안호영, 최보윤)이 칭찬하는 신중하고 깔끔한 성격의 발로였을 것입니다. 또한 연구참여자들 역시 인터뷰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우리를 탐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근비를 내줄 거냐’고 묻는 B에게 간병노동은 노동시간이 곧 벌이로 이어지는 일이었고, 인터뷰는 그러한 노동시간을 빼앗기는 일이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김은혜는 '00(연구자)씨는 ~~한 성격이고, %%(연구자)씨는 ~~한 성격인 것 같다’며 이것저것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김은혜의 ‘무엇이든 가르쳐주겠다’는 태도와 간병인 교육에 대한 열의, 특유의 달변은 교사로서 생활한 시간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한국에서 홀로 남편을 돌보며 가계를 부양하는 상황에서 최보윤에게 일순간 연구자들은 아들의 진학(과 이주를 통한 가족의 결합)을 상담할 수 있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인터뷰는 연구자가 연구참여자를 알아가는 시간인 동시에, 연구참여자가 연구자를 파악하고, 경계를 풀고, ‘대학생들이 뭐하려고 나를 만나러 왔나’라는 공통적인 의문을 스스로 풀어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들과의 연구결과를 김성환과 최보윤의 기술을 중심으로 ‘이주’, ‘간병’, ‘젠더’의 순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연구자들은 연구참여자들의 경험을 섣불리 선행연구에 끼워맞추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각 의제에 정합적인 설명만을 선별하기보다는 이주와 간병, 이주와 젠더, 간병과 젠더가 교차하는 복잡한 지점을 포착하고자 했으며, 특히 이러한 의제들이 연구참여자가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두었습니다.
이주
1. 이주 동기와 과정
2024년 말 기준, 중국 국적 동포는 668,126명으로 전체 외국인의 25.2%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992년 한중 수교, 2002년 외국국적 동포 취업관리제, 2007년 방문취업제 등 이주를 용이하게 하는 사회제도적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중국동포 이주자의 수는 크게 늘었습니다. 특히 방문취업 (H-2)제도는 재외동포(F-4) 비자는 국내 연고가 없는 동포에게도 입국 자격을 부여하고, 가족 초청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재외동포법은 합당한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혈통적, 민족적 조건)을 충족하나 국외로 이주한 한국인들에게 법적 지위를 보장해주기 위한 법률로, 재외동포의 이주는 귀환이주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대한민국이 취하고 있는 단일민족 정체성, 국가주의적 이주 접근법을 보여줍니다.
인터뷰에서 만나본 중국동포 간병인에게 한국은 ‘조상이 있는 고향’인 동시에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이주하는 전략적 선택지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사적네트워크(친구, 친척)를 통해 한국에 대한 관심과 한국에서의 노동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을 환기했습니다. 이때 간병일 자체보다는 한국에서의 노동이 이주의 목표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주 이전의 네트워크는 이주 후에도 이어지며, 연쇄이주와 순환이주를 통해 가족·친구 공동체를 유지합니다.
동북3성 조선족은 거의 다 한국 나와요. 벌고 싶으면 다 한국 나와. (김성환)
1978년부터 시작된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은 상하이·칭다오 등 연해 지역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전통적 중공업 지역이던 동북3성(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은 오히려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시사인 2019). 김성환, 김은혜 등 동북지역(연변)에 살던 중국동포 간병인에게 동북지역의 경제난, 한국과의 임금 차이, 먼저 이주한 지인의 성공담 등이 이들의 주된 유입요인(pull factor)였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간병인들은 대부분 재외동포(F-4)비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2019년 재외동포법 시행령 개정으로 현재 만 60세 이상의 동포가 F-4 비자를 취득하고자 할 경우 한국어 능력 입증 서류와 해외 범죄경력 확인 서류가 면제되는데, 연구참여자 중에는 이를 인지하고 의도적으로 만 60세를 넘은 이후 늦은 이주를 한 경우도 존재했습니다.
저 그래서 친구한테 처음 20년 만에 전화 걸었죠. 그러니까 자기 동생이 인천에 있는데 일거리가 그렇게 많대요. (최보윤)
중국동포 간병인들의 사적 네트워크는 이주를 결심하고 간병일을 시작,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인입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간병인들은 한국에 먼저 이주한 친구, 친척, 지인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적 네트워크는 이주를 중개하거나 일자리를 알선하는 등 이주의 중위구조로 기능합니다. 간병인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사적 관계를 맺기 보다는 중국에서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가족, 친구들이 연쇄적으로 한국에 이주해 그들과 관계를 지속하기 용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간병인과 대화를 나누기 어렵고 쉬는 시간이 불규칙한 간병노동의 특성 탓도 있을 것으로 풀이됩니다.
2. 순환이주와 초국가주의 실천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으로 입국하는 조선족의 이동은 즉 ‘고향’을 향한 대규모 귀환 흐름이었으며, 공식적 차원의 ‘조국의 어머니’인 중국과 민족과 혈연적 차원의 ‘고향’인 한국과의 애매모호한 위치성이 이들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동포 간병인들은 이 ‘애매모호한 위치성’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객체가 아니며 이들은 양국의 제도와 자원을 모두 활용하고자 하는 초국가적 전략(transnational strategy)을 구사하며 이들의 삶에서 이주는 생애주기에 지속해서 일어나고 또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겨집니다.
연변은 깨끗하고 돌아다니기도 좋아요. 그 가면 조상 뿌리 다 있고. (최보윤)
그들에게 한국은 낯선 곳이 아니었습니다. 연변 조선족자치구에 거주하지 않았거나 한국말이 서툰 경우에도, 그들은 부모로부터 조선어교육을 받았으며 어릴 적 살던 곳에는 조선인들이 많았다고 회고합니다. 최보윤은 연변에 여행 갔다온 사람들의 후기를 들려주며, ‘거기에 조상의 뿌리가 있다’고 말한 것은 ‘조선족’으로서 가진 정체성을 포착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이에 더해, 이주 이전 삶에서도 이들은 한국과 꾸준히 관계맺으며 살아왔습니다. 조선족이라는 민족적 배경과 함께, 이들의 생애사적 경험은 이들이 이주를 결심하고 한국행을 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하다가 힘들면 제 나라를 가고 싶고 이렇지. 집으로 가면 가서 삼시 밥 먹고 놀고 싶으면 놀고 일 안 하고 얼마나 좋아. 한국에 있으면 계속 일해야 되니까. (김성환)
아니 여기서 그냥 살 수 있으면 살아야 되지. 그런데 노동력 상실하면 어떻게 살아야 돼 그게 지금 앞으로 그게 제일 걱정이죠. (최보윤)
이주라는 선택지는 중국동포 간병인의 삶에 언제나 존재합니다. 간병하는 병원이 바뀌면서 국내의 다른 도시로 이주하고(김성환, 이양수), 간병하던 환자가 퇴원해 집에서 활동지원을 하게 된 경우(김은혜)도 있었습니다. 안호영에 따르면, 장기입원환자를 맡아 환자가 병원을 옮길 때마다 따라다니는 남성 간병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지, 중국에서 살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간병인들은 서로다른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힘닿는 데까지 일을 해야 하니까 한국에서 살겠다는 답변(김영배, 안호영), 아직 정해진 바가 없으며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답변(김성환, 이양수), 한국의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서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답변(김은혜, 최보윤)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답변에서 중국동포 간병인들은 ‘���산인력’으로서의 자부심과 사회주의적 가치관에 기반해 한국에서의 장기 노동을 희망하는 한편, 순환이주의 형태로 중국과의 관계도 유지합니다.
한국은 내장이 든든한 작은 새다. (최보윤)
연구참여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과 한국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도시화를, 한국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최보윤은 ‘한국은 내장이 든든한, 오장육부가 건강한 작은 새’라고 표현하며, 은퇴 후 한국에 살고 싶다고 했고, 김은혜 역시 한국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살기 너무 좋다고 말했습니다. 더구나 간병인들의 중국의 사회보장에 대한 인식은 이들의 이주 전 시점의 맞춰져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의 사회보장시스템을 직접 경험하며, 한국을 제도화된 돌봄을 제공하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이 이들의 미래 구상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들은 노령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의료보험 및 복지 체계의 현실적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3. 이주와 자기인식
한국 사회에서 중국동포(조선족)는 종종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교육 수준이 낮으며, 주로 중국 동북지역 출신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로 인식되곤 합니다. 중국동포를 단일한 사회집단으로 간주하는 통념은 현실과 괴리가 있으며, 그들의 다양성과 복합적 정체성을 간과합니다. 실제 연구참여자들은 출신 지역, 사회경제적 배경, 교육 수준, 그리고 삶의 방식에 있어 상당한 이질성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생애경험을 했고,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이주 전의 사회적 계급, 간병일을 하면서 맺는 관계, 간병일을 하지 않는 가족·친지와의 관계는 자신의 간병노동을 정의하고, 계급의식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가 그런 일은 못하죠. 우리 신분에. 절대로 못하죠 중국에서는. 근데 여기 와서 그거 볼 거 있어요. 내가 이미 이 땅에 발을 들여 놨으면 먼저 살고 봐야 되니까. (최보윤)
중국에서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높았다고 말한) 간병인들은 중국에서의 지위와 한국의 간병노동자라는 지위 사이의 간극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고자 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김은혜와 회계사였던 최보윤은 은연중에 간병노동을 ‘최하층 일’(김은혜)로 규정하고, ‘우리 신분에 절대로 못한다’(최보윤)며 계급의식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김은혜는 간병일을 하는 것을 지인들에게 자랑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그러한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전문성 있게, 정성들여 간병노동을 수행하고 있는지 강조했습니다. 한국에 와있는 중국동포 간병인 가운데 농민이나 노동자 출신이 많다고 언급하면서도, 자신들은 그들과 다르다며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간병일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가족들에게 간병일을 추천하냐’는 질문에는 ‘가족들이 왜 이런 일을 하냐’며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김은혜는 남편은 원래 국세청에서 사람들을 부리던 사람이라 이런 일을 못하고, 아들은 컴퓨터 회사에 다니는 엘리트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안호영은 병원 통역사 일을 구해볼까 했던 딸에게 ‘나 하나로 부족해서 네가 병원에 들어오려고 하냐’며, 너무 힘든 일이라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아내에게 간병일을 추천한 김성환이나, 아내와 함께 간병일을 시작한 이양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중국에서의 계급 차이에 기인한 것인지, 젠더 등 다른 요소가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언제나 ‘나는 내 한 사람인 게 아니라 나는 중국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도 있고 이러니까 언행을 나는 꼭 조심해야 되겠다 이게 내가 꼭 있죠. 언제나. (최보윤)
간병인의 사회적 관계는 환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간병인은 의사와 간호사, 다른 간병인, 보호자, 복지사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의 이주배경 때문에 고충을 겪기도 합니다. 최보윤은 ‘(한국 간병인들은) 좀 우세하지. 내 나라에서 하니까. 좀 우리가 우리 보고 좀 [텃세를 부려요?] 그렇죠’라며 이주민과 한국 국적 간병인 간의 보이지 않는 위계를 증언했습니다. 김은혜 역시 한국인들은 중국인 간병인들을 ‘없이 본다’며 일터에서 이주민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간병
1. 시작하게 된 계기
그래, 나이가 70 몇이 되니까 간병인 밖에 할 게 있어. (김성환)
연구참여자들은 모두 60~70대로, 고령의 나이에도 할 수 있는 일은 간병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성환은 2014년 한국으로 이주한 뒤 처음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였으나 불안정한 수입과 건강 악화로 인해 간병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간병은 비교적 노동 강도가 낮고 일정한 수입을 기대할 수 있어, 고령의 몸으로도 꾸준히 감당할 수 있는 선택지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최보윤 역시 간병을 나이에 맞는 직업이라고 말했습니다. 간병협회에 소속되어 종합병원에서 일하면 간병 일정 사이에 며칠 쉴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언급했습니다.
나아가서 간병 일은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김은혜는 “저는 영원히 생산력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간병을 통해 나이가 들어도 ‘일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발견하고, 사회적으로 인증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처럼 이주민으로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중국동포들은 오랫동안 생산인력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간병에 진입하였고, 그 일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2.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이 결합된 간병노동
간병 노동은 환자 옆에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특성상,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하며 신체적·정신적 피로를 유발합니다. 김성환은 얕고 좁은 간이침대에서 자야 하며, 어떤 날은 2~3시간, 심지어는 1시간도 자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치매 환자의 경우, 석션 치료나 돌발 행동에 대응하기 위해 밤샘 돌봄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안호영은 환자의 고함으로 인해 다른 환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처치실에서 밤을 새운 경험을 전했습니다. 간병 중 식사 문제도 있습니다. 요양병원과 달리 일반병원에서는 간병인이 식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간병 중에는 짧은 외출조차 어려워 휴일에 미리 준비한 음식을 병원 냉동실에 보관해 놓았다가 전자레인지로 데워먹는데 냉동한 음식은 ‘돌같다’고 표현될 정도로 만족스럽지 않았고, 환자와 함께 생활하는 병실 공간에서는 데우는 것도 냄새 문제로 제약을 받기도 합니다.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이양수는 하루도 쉬지 못한 채 일하는 경우가 많으며, 가족의 경조사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휴가를 받습니다. 그는 반복되는 신체노동으로 인해 허리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간병노동은 충분한 휴식과 식사가 보장되지 않는 조건 속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간병노동은 육체적 피로를 감내하는 동시에 고강도의 감정노동을 수반합니다. Hochschild(1983)에따르면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서비스의 일환으��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거나 고무시키는 등 실제 느끼는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노동을 의미합니다. 간병업무 중 환자의 배설물 처리나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 불쾌감을 유발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간병인은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침착하게 돌보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이 과정에서 간병인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함으로써 환자에게 정서적 불편함이나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도록 배려하며, ‘불쾌하지 않음’이라는 안정감을 제공하는 실천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입니다.
치매환자한테는 차라리 어떤 때는 할머니 왜 이래 이런 말이라도 한마디 할 수 있잖아요. 똑똑한 정신에는 그런 말 못해요. 할머니 왜 이러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할머니가) 하는 거는 보면 마음에 안 드는데 이렇게 말을 해야 돼. 말을 하려면 할머니 왜 그러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꽉꽉 누르면서 그러니까 참을 때가 너무 많고 힘들 때가 너무 많은 거야. (안호영)
안호영은 치매 환자와의 소통 과정에서 감정 통제의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치매환자의 경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환자에게 불만이 생기는 상황을 처할 때도 감정을 억제해, 간병인으로서 환자의 기분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공손한 말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간병인은 신체적 부담과 감정적 소진을 동시에 감당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으며, 수면과 식사 환경, 반복적 시체 활동으로 인한 통증, 그리고 감정노동까지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참여자들은 '힘들어도 감당해야 할 몫'으로 묵묵히 버텨내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3. 자율성과 책임의 양면성
간병노동은 환자마다 요구되는 돌봄의 내용과 강도가 달라, 특정한 업무가 정해져 있기보다는 간병인은 이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간병인은 노동에 있어 자율성을 갖는 동시에 개인이 환자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양면적인 노동 조건에 놓이게 됩니다. 간병협회는 자율적인 노동이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다양한 규칙을 마련해 간병인을 관리합니다. 규칙에는 ‘기본 예절을 지키고, 존댓말 사용, 약물복용 절대 금지, 위생 관리, 이름표 착용, 용모 단정, 의료진의 지시 적극 실천, 병실 안팎에 모여 잡담하거나 간식을 먹지 않는다’와 같은 세부적인 항목이 존재하며, 연구참여자는 이를 핸드폰에 저장하고 수시로 확인한다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협회 실장에게 문자를 통해 지시를 받았고 정기적으로 간다한 교육을 받기도 합니다.
간병인 규칙이 바로 내가 해 나온 그 경험에서 생기는 거고앞으로도 그렇게 질서 있게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이렇게 하면 이게 바로 규칙이다. (안호영)
이 가운데 몇몇 연구참여자들은 자신만의 기준과 규칙을 세워 일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안호영은 협회의 지침을 참고하되, 자신의 경험과 윤리 기준에 따라 실질적인 돌봄 방식을 수행하며 환자마다 건강 상태와 돌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자율성은 보호자와의 관계에서도 드러나는데, 최보윤은 “보호자들하고 교류를 세게 해요.”라고 말하며, 환자의 상태를보호자가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매일 환자의 건강 상태를 문자로 상세히 보고하고, 산책하는 모습을 사진에 찍어 전달함으로써 보호자의 불안감을 덜어주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간병노동의 자율성은 환자에 대한 책임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특히 장애인활동보호사로 환자 집에서 환자를 돌보는 김은혜는,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간병인의 역할이 곧 환자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고 말하며, 간병사나 장애인활동보호사나 요양보호사, 즉 돌봄 영역에 종사하는 누구나 응급 상황에 대비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간병노동은 간병인의 자율성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전제로 하며 그만큼 높은 전문성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젠더
1. 젠더에 따른 간병 진입 경로의 차이
남자분들은 여기 와서 현장 나가고 전부 그런 거 하잖아요. 그런데 그 후에 이제 이 사람들도 알았어요. 이제 현장 일은 비 와도 못 하고 일 없어도 못 하고 눈 와도 못 하고 너무 추워도 못 하고 그다음에 또 일 없으면 또 못 하고. 그러다가 이제 자기네들 친구들한테 건너건너 들어갖고 어떤 사람은 마누라가 남편 보고 “그렇게 집에 들어앉아 있으려면 차라리 와서 간병을 해라. 이거는 1년 사시장철 니만 부지런하면 다 한다.” 그래 가지고 불러와 가지고 요양병원에서 부부 간에 한 병실을 보고 그런 사람들 많아요. (안호영)
여성 중국동포 이주민이 한국에 들어와 가장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영역은 간병입니다. 여성 간병인들은 친구와 가족 등 주변 중국동포 중 많은 여성들이 간병일을 하고 있었고, 그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간병일을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비해 남성 중국동포에게는 ‘현장일’이라고 불리는 건설 현장 노동이 일반적인 경로로 보였고, 간병은 건강상 현장일을 하는 것이 어려울 때 그 다음으로 고려되는 선택지였습니다. 그러나, 건설현장의 단순노무는 육체노동의 강도 외에도, 날씨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일이 없을 때가 많은 불안정한 직종입니다. 건설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요즘, 간병이 안정적인 수입을 장기적으로 보장한다는 면에서 더욱 선호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이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간병을 시작하는 것에는 일종의 문턱이 있으며, 그래서 먼저 간병을 시작한 아내의 조언에 따라, 혹은 아내와 함께 간병에 진입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 모든 연구참여자들이 간병인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연구자들이 여러 간병협회에 연락하여 남성 간병인에 대해 물었을 때도 해당 협회에 소속된 남성이 아예 없거나 두세명 있다는 답변을 자주 들었습니다. 김성환 역시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본인이 속한 협회의 유일한 남성 간병인이었습니다. 일부 연구참여자들은 협회가 남성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거나 환자가 대부분 여성 간병인을 선호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아 남성이 여성에 비해 간병인을 직업으로 덜 고려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여성에 비해 남성 간병인은 수요가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2. 젠더에 따른 간병 노동의 차이
그렇다면, 실제 노동 현장에 있어 여성 간병인과 남성 간병인의 역할 차이가 있을까. 남성이라서 간병에 유리하거나 힘든 점이 있는지와 같은 질문에 남성 간병인들은 대개 모르겠다거나 여성과 남성이 하는 일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식으로 답했습니다. 아무리 여성간병인과의 교류가 적다고 하더라도 병원에서 “남자는 극소수”(김성환)라고 하면서 젠더에 따른 노동의 차이나 남성으로서 간병을 하는 것은 어떠한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모습은 주목할 만 한 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질문에 여성 간병인들은 환자를 나르는 등 근력이 필요한 일에 있어 남성이 유리하며 그래서 여성 간병인이 남성 간병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는 남성 간병인이 여성에 비해 답변을 짧게 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여성은 실제로 간병의 육체노동적 측면에서는 남성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기 떄문에 젠더에 따른 차이를 체감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연구참여자 안호영은 반대로 여성이 돌봄에 익숙하기 때문에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손이 빨라 남성간병인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남자들은 꼭 여자보다 세 시간을 못버텨요. 금방 하면서 늘 수 있는데 그 이 사람들이 나쁘다 하기보다 선천적으로 여자들은 좀 세심하고 남자들은..자기 몸 챙기는 것만 알지 않아요? (최보윤)
여성 간병인들은 일반적인 인식대로 여성이 남성보다 간병일에 적합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성 간병인들은 공통적으로 여자가 선천적으로 더 세심하고 일을 빠르게 배우며 남성은 그에 비해 못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3. 가정에서도 멈추지 않는 여성 간병인의 돌봄
그러나 여성이 대개 가정 내에서의 돌봄 경험이 있었고 그래서 간병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연구참여자 안호영은 중국에서 남편을 간병했던 경험이 있었으며 최보윤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의 간병에만 전념했던 시간이 그의 인생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이주한 이후에도 이들의 돌봄은 간병이라는 임금노동 밖에서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연구참여자 안호영은 이주 직후 3년간 딸의 산후조리를 도우며 손녀를 돌보았고, 최보윤은 간병을 하지 않는 휴일에는 아픈 남편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특히 연구참여자 최보윤의 경우, 그의 인생은 돌봄과 떼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늦은 나이에 얻은 큰 아들은 20년간의 투병 끝에 2021년 세상을 떠났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이었던 최보윤은 아들의 투병이 계속되면서 집을 팔고 병원비를 후원받았습니다. 큰 아들의 죽음 이후 작은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는 새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남편이 뇌혈전으로 거동이 불편해졌고 언어 장애가 심해져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전부터 한국 적응 자체를 힘들어하던 남편은 우울증 증상을 ���였고, 최보윤은 병원에서 내내 환자를 돌보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남편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인터뷰 도중에 최보윤은 그를 기다리는 남편의 전화를 계속 받아야 했고, 남편에 대한 걱정을 지속적으로 내비쳤습니다. 지난 몇 십년간 주변 관계를 단절한 채 아들만 돌보며 살았던 최보윤은 한국으로 이주한 이후에도 일터와 가정에서 24시간 돌봄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전통적 성별분업하에 많은 여성 간병인의 돌봄은 일터에서 그치지 않고 가정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4. 여성 간병인의 취약한 위치
그 날 이분이 얼마나 웃기는지 알아요. 그냥 저보고 “집에 안 가?” “집에 안 가요. 할아버지 도와드려요.” 그러면 “올라와 같이 자자.” 그래서 귀에다 대고 “할아버지 저는 지금 간병인이에요.” (했더니) “못 알아들어 뭐라고 해?” 그래요. 근데 옆에 분들이 그랬죠. “저 할아버지는 한국말을 왜 못 알아들어요?” “내가 알아듣고 싶은 말 들어요.” 정말 재밌어요. 힘이 들면서도 재밌는 일이 많아요. (최보윤)
여성 간병인은 남성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겪었던 성희롱 피해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최보윤과 김은혜는 이러한 피해 경험을 웃긴 에피소드 정도로 언급하는 등 큰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경험은 분명한 성희롱이며, 여성 간병인은 거의 종일 환자와 병실에 함께 있으며 기저귀를 가는 등의 밀접한 접촉을 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또한 종합병원에서는 협회 실장에 의한 간단한 회의 외에는 노동 환경에 대한 별다른 관리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아 피해를 인식하더라도 이를 알리고 해결하는 것도 어려우리라 짐작됩니다.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가 발간한 ‘2022∼2023 장기요양요원 노동·성희롱상담 사례집’에 따르면, 2년간 해당 센터에 접수된 성희롱 상담 건수는 57건입니다. 건강보험공단이 전국 종사자 대상으로 운영하는 고충상담 창구에 접수되는 성희롱 사례가 연평균 15건인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의 수치입니다. 장기요양요원에는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등이 있는데, 신고 건수의 80%는 여성 요양보호사에 의한 것이었다. 이 사례 중 절반은 근로계약을 맺은 장기요양기관에 알려졌지만, 별 다른 대응조차 받지 못했고 심지어 2차 가해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한겨레 2014). 물론, 요양보호사는 국가 자격시험에 의해 그 자격이 주어지는, 간병인과 다른 직업이지만, 이 둘은 노인 돌봄이라는 서비스 제공에 있어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수치는 간병인의 피해 정도 역시 짐작하도록 합니다. 나아가 간병인은 요양보호사보다 인정받지 못하는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점도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결론
본 연구는 중국동포 간병인의 삶에서 이주, 간병, 젠더가 교차하는 구체적인 삶의 궤적을 탐색했습니다. 비가시화되는 돌봄노동자, 고정적 이미지로 재현되며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는 중국동포, 여성화된 노동에 종사하는 남성 또는 성폭력에 취약한 노동현장에 노출되는 여성. 어떠한 단일한 이미지도 중국동포 간병인이 그려내는 다양한 삶의 전략을 온전히 설명해내지 못합니다. 중국동포 간병인의 삶은 그가 일생동안 겪은 일들, 그의 삶에 교차한 다양한 사회적 맥락, 그리고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며 적극적으로 삶을 모색하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교차점 위에 있을 것입니다. 본 연구는 중국동포 간병인의 삶을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그려내는 교차적 시각을 제공합니다.
이상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몇 가지 한계점을 지니며 후속 논의가 필요한 지점들을 남깁니다. 먼저 참여관찰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절대적인 연구참여자의 수가 부족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병원이 외부인 출입에 매우 엄격해졌고, 간병노동의 현장, 즉 병실 등 병원 공간에 ‘연구자’로서 진입하기는 향후에도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간병인으로 일해보거나 가족 등을 간병한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의 자문화기술지(Autoethnography)적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본 연구의 논의를 효과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상기의 내용이 현실적 한계 때문에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연구방향을 바꾸고 뒤늦게 구술사적 서술방식을 시도하며 시간적 한계 때문에 시도하지 못한 것들은 더욱 아쉬움을 남깁니다. 예컨대 참여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서 심층적인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한 것, 간병인 외의 환자나 간병협회 실장 등 다른 연구참여자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주, 간병, 젠더를 교차적으로 포착하고자 한 본 연구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의미있다고 판단되며, 자문화기술지나 구술사 등 심층적인 연구수단을 활용한 후속연구를 통해 본 연구의 논의를 확장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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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pekte, edited by Bilden, H., and Dausien, B., Opladen; Farmington Hills: Verlag Barbara Bu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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