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이름으로: 마주침과 나아감 탄핵광장과 그 이후 집회 현장을 중심으로

연구배경

2024년 12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2025년 4월 5일 탄핵 소추가 인용되기까지 약 4개월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역사의 한 가운데 있었다. 여의도와 광화문, 남태령과 한강진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광장을 열었다. 여의도를 가득 채운 시민 중 특히 주목받은 이들은 2030 청년 여성들이었다. 사람들은 응원봉을 들고 K팝을 부르는 수많은 청년 여성 집회 참가자들을 목격하고, 탄핵 소추안 가결의 순간을 ‘빛의 혁명’이라고 불렀다. 이후 탄핵 집회는 남태령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각 지역에서 트랙터를 몰고 광장에 참가하러 온 전봉준투쟁단(이하 전농)과 농민들은 서울 경찰청에 의해 가로막혔다.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남태령으로 달려갔고, 한남동 관저 앞을 행진하는 트랙터는 ‘지방 거주 농민’으로 대표되는 집회 주최자들과 ‘���울 거주 청년’으로 대표되는 집회 참가자들 간에 형성된 강한 연대를 형성했고, 탄핵 집회가 아니더라도 연대가 필요한 집회에 달려가는 집회 참가자들을 ‘말벌 동지’로 호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탄핵 정국 중 가장 처절했던 순간은 무박 3일 한남동 집회였다.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의 체포를 촉구하기 위해 전국민주노동총연합(민주노총)이 주최한 한강진 집회는 경찰이 민주노총 조합원 일부를 폭력적으로 연행하고 체포하면서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 권력을 규탄하는 집회로 그 성격이 변모했다. 폭설 속에 철야 집회를 이어간 연대자들은 ‘키세스단’으로 불렸다. 이 연대의 흐름은 지혜복 교사 A학교 복직 투쟁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포복 농성으로, 구미옵티칼과 세종호텔,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고공농성 투쟁으로, 동덕여대의 학내 민주화 투쟁으로, 프리 팔레스타인 행진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목적을 강조한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 혁명과 달리, 2024년 윤석열 탄핵 집회는 탄핵을 ‘사회대개혁의 시작’이라고 규정한다. 자유발언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자신이 연대하는 수많은 다른 의제들을 외치며 발언을 마무리한다. 전농은 남태령의 답례로 퀴어 연대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깔의 떡을 나누었고, 민주노총은 ‘응원봉 동지’와 ‘무지개 동지’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전장연의 크리스마스 명동 집회에 참여한 동덕여대 학생들은 이제 전장연의 마음을 알겠노라, 말했고, 전장연은 동덕여대 집회에 참가해 연대를 표현했다. 4월 5일 비상행동이 주최한 ‘주권자 시민 승리의 날’ 집회에는 수많은 사회운동단체 소속 시민들이 단상에 올라 탄핵 이후 추구해야 할 사회대개혁 의제들을 발표했다.

탄핵 광장은 서로 다른 정체성과 의제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목격하고, 인지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연대를 확장하는 동시에 관념의 충돌을 겪는 마주침의 공간이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정체성, 의제를 가진 사람들이 광장에서 서로를 경험하는 ‘마주침’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집회를 주최하고, 집회에 참여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한강진 등 탄핵 광장에 참여한 사람들의 온라인 기록을 검토함으로써 서로 다른 정체성과 의제를 가진 사람들이 탄핵 광장에서 어떻게 마주쳤으며, 이 경험이 어떻게 서로를 바꾸어 놓았는지 주목하고자 한다. 또한, 탄핵 이후의 집회를 참여 관찰하고 마주침을 깊게 경험한 사람들을 인터뷰함으로써 ��� 마주침이 광장에서의 연대를 어떻게 형성했으며, 탄핵 이후의 광장에서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밝히고자 한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이 혼란스럽게 교차하는 민주주의의 장으로서 광장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민주주의’를 공통의 의제로 삼아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고민할 것이며, 탄핵 이후 사회운동과 광장이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가는 방향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이 설정한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①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마주침’은 어떠한 공간과 상황에서 이루어졌는가?

② ‘마주침’은 어떤 개념이며, 사람들은 어떻게 집회 현장에서 상호작용하는가?

③ ‘불편한 마주침’이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인식되며, 사람들은 ‘마주침‘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연구방법

본 연구는 참여관찰과 인터뷰에 집중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참여관찰은 서울에서 열리는 다양한 집회에 최대한 많이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3월과 5월 사이에 서울에서 열린 13개의 집회를 참여 관찰하였다. 연구자들은 집회에 직접 참여하여, 집회 참여자들과 상호작용하며 연구 질문의 답을 찾고자 하였다. 또한 집회 현장의 풍경, 발화, 정동에 대해 활동 노트와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연구자들이 참여한 집회 현장은 다음과 같다.

참여관찰 현장

인터뷰는 3월과 6월 사이에 개인과 집단을 포함하여 9명의 인포먼트를 선정하여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포먼트는 연구자의 지인, 집회 참여자, 집회 주최자 등 다양한 분류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노력하였다. 모든 인터뷰는 대상의 인터뷰 동의를 받고, 연구 자료에 인터뷰 내용이 사용된다는 것을 사전 고지하였다. 그리고 인포먼트들에게 연구자들의 연구 주제와 내용에 대해 설명하였다. 동시에 언제든지 인터뷰 내용의 삭제, 변경을 요구할 수 있으며, 기술지 작성이 종료된 이후, 녹음과 필기본 같은 인터뷰 자료가 완전 삭제된다 고지하였다. 연구자들이 인터뷰한 인포먼트는 다음과 같다.

인포먼트

우리가 마주친 광장의 풍경

본 연구를 진행하며, 우리는 각자 혹은 함께 다양한 집회 현장을 방문했다.그 어떤 선행연구보다도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끼고, 신체로 경험한 현장만큼 우리가 마주친 광장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각자 참여관찰 연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광장의 모습을 돌아보며, 광장을 기록하고자 한다.

김지민: 고공농성 승리문화제 - 새로운 영역과의 마주침

나는 오랜 시간 ‘광장’을 멀리서만 지켜보았다. 광우병 집회, 박근혜 탄핵 시위 등은 모두 뉴스 속 이야기일 뿐, 나와는 무관한 일처럼 느껴졌다. 직접적인 이유는 해외 거주로 인한 거리감이었지만, 실은 진지하게 광장을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번 수업을 통해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의 복직을 위한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광장을 마주했다. 현장에서 본 풍경은 나의 상상을 훨씬 넘어섰다. 무거운 깃발을 처음으로 들어 보았고, 노동자들의 쏟아지는 외침을 들었고, 연대를 실천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보게 되었다. 고공 농성 중인 노동자를 보고, 절절한 연설을 들으며, 서로를 지지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보며, 광장이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닌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는 장소임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광장은 이제 ‘사람들의 희망이 모이는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진새인: 시민 총파업 - 신체로 경험한 연대

3월 27일 광화문에서 열린 시민 총파업 및 동맹 휴강 집회에 참여했다. 헌법재판소의 빠른 판결을 촉구하는 이 집회는 오랜만에 참여한 탄핵 광장 경험으로, 변화된 분위기를 느껴보고자 했다. 처음엔 집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현장은 또래 학생들과의 연대와 활기찬 분위기로 가득했다. 행진 중 구호를 함께 외치고, 춤과 노래에 참여하면서 어색함은 사라지고 해방감과 즐거움이 밀려왔다. 특히 서로를 존중하고 동의하는 분위기 속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쉽게 하나가 되는 경험은 인상 깊었다. 집회에 대한 두려움과 거리감이 해소되었고, 이런 신체적 기억과 감각들이 앞으로도 연대와 참여의 동력이 될 것이라 느꼈다.

황어진: 2차 남태령 대첩 - 서로 다른 이들의 교차

3월 25일 남태령 집회 현장은 처음에는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왔지만, 무지개 배지와 투쟁 띠를 맨 청년 여성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하면서 불안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평온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집회 현장은 자유발언, 민중가요와 케이팝, 다양��� 깃발, 트랙터와 푸드트럭 등으로 시각적·청각적으로 매우 역동적이었지만, 그 안에서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 이유는 광장이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장애인, 퀴어, 농민, 노동자,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자유롭게 외쳐졌고, 서로 다른 삶이 교차하며 연대와 신뢰가 쌓였다. 나 역시 나의 취약함을 드러내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와 슬픔을 느꼈고, 이 경험이 앞으로의 집회와 연대의 원동력이 되었다. 광장은 모두가 서로의 선생님이 되는, 소외된 목소리가 존중받는 소중한 공간임을 깨달았다.

전지은: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 연결되는 광장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이후, 광장의 풍경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올해 3월 22일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서 목격할 수 있었는데, 바로 탄핵 광장에서 자주 보인 개인 깃발 기수들이 이 집회에도 참여한 풍경이었다. ���년의 경우 정당, 운동 단체가 중심이 되었던 연대 집회가 이번 탄핵 광장을 통하면서 개인 주체들의 연대로 확장된 모습이었다. 또한 연대 발언, 행진 중 구호를 통해 노동, 탄핵, 소수자 등 다양한 의제가 팔레스타인 연대와 연결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탄핵이라는 하나의 의제에서 출발하여 다른 여러 의제로 확장된 시민들의 연대는 광장이 가진 연대의 가능성과 힘을 보여주었다.

[이미지 1]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모인 다양한 깃발들

탄핵 광장에서의 다양한 마주침

탄핵 집회에서의 ‘마주침’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연대’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참여자들은 서로 다른 정체성과 의제를 지닌 채 광장에서 만나, 함께 구호를 외치고 상징물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집회에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이에 다른 이들이 호응하며 지지하는 모습이 연대를 강화했다. 민주노총과의 만남, 구호 방식의 변화, 나눔의 문화, 다양한 정치적 상징물들은 모두 이런 연대의 감각을 드러낸다.

[이미지 2] 탄핵광장의 다양한 상징물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 소속 활동가 B는 외국인으로서 한국 탄핵 집회에 참여한 이유로, 계엄 상황에서의 연대 필요성과 외국인으로서의 제약을 언급하며 팔레스타인·세종호텔 집회 등 다양한 집회로의 연대를 실천했다.

연대 기수 C는 탄핵 집회를 계기로 다른 집회들에 연대하며 본격적인 집회 참여를 시작했고, 2월경부터 “탄핵 집회에서 애쓴 사람들이 다른 집회도 함께하자”는 글을 보고 세종호텔 집회에 참여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거통고, 지혜복 선생님 투쟁 등 다른 집회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비상행동 자원봉사 경험이 있는 대학생 환경운동가 G 역시 주변 인물들 과의 경험을 통해 광장이 다양한 의제로 확장되는 모습을 체감했다고 밝혔다.

“G: 사실 윤석열이 퇴진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있어도 직접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항상 가는 사람만 가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관련해서 아까 얘기했던 동덕여대라든지 그런 일이 생기면서 그쪽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이 이런 의제로 알게 되고 그 의제를 통해서 퇴진 광장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눈으로 봤거든요. 그걸 보면서 어떤 거대한 하나의 사실 탄핵이라는 건 매우 큰 주제인데 이 큰 주제가 개개별의 의제를 찾아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개개별의 의제가 하나로 모이게 할 수도 있구나를 제가 눈으로 직접 봐서 느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탄핵이라는 큰 의제는 각자의 작은 의제와 연결되며 새로운 ���대를 만들어냈고, 마주침은 지속적이고 연쇄적인 연대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탄핵 집회 이외의 광장에서의 마주침

왼쪽 상단부터 [이미지 3] 세종호텔 부당해고 복직 투쟁 현장, [이미지 4] 농업 대개혁 범시민대회, [이미지 5] 서울 퀴어퍼레이드의 사진

4월 10일,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 복직을 위한 집회에 참여했다. 세종호텔에서 고공 농성 중인 노동자를 중심으로 발언과 문화제가 이어졌고, 그후에 명동 거리로의 행진도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 중년의 노동당 당원을 만났다. 그분은 우리가 들고 있던 눈사람 깃발에 관심을 보이며, 투쟁과 단결이 적힌 띠를 깃발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함께 사진도 찍으며 노동당 명함을 주셨다. 일상에서는 만날 일이 없을 법한 중년 노동당원과 20대 대학생의 만남은 광장이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마주침은 ‘광장에서는 어떻게 이질적인 이들이 서로를 만나고 연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했고, 이후 우리의 연구 주제 방향을 이끄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5월 10일, 광화문에서 열린 ‘농업 대개혁 범시민대회’에 참여하면서 의성 농민회 분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하였다. 처음엔 경상도 사투리와 세대차이 때문에 농민 분들과의 소통이 조금 어려웠다. 그 후의 식사 자리에서는 농민회 분들과 의성군 이야기, 농민 집회 참여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였고, 전대 농민회 회장과는 청년 세대와 인생에 대한 깊은 대화도 나눴다. 이 경험을 통해 마주침이 단지 얼굴을 맞대는 것이 아니라, 언어·문화·정체성의 장벽을 넘는 복합적인 상호작용임을 실감했다. 그렇게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농민 분들과도 공통의 의제를 나누고, 연대할 수 있다는 마주침을 목격했다.

6월 14일 서울 퀴어퍼레이드는 다양한 주체와 의제가 얽히고 교차하는 복잡한 마주침의 공간이었다. 퀴어뿐 아니라 정당, 기업, 농민단체, 노동조합, 팔레스타인 연대, 사회적 참사 애도 등 ���러 집단단이 참여하며 광장은 퀴어라는 하나의 의제를 넘는 연대의 장이 되었다. 퍼레이드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구호를 외치거나 고공농성 노동자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처럼, 다양한 의제가 연결되고 교차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처럼 퀴어퍼레이드는 단일한 퀴어 인권 요구를 넘어,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함께 교차하고 연대하는, 복합적이고 열린 공간으로 작동하였다.

마주침이 어떻게 연대가 되는가?

광장에서의 마주침은 단순한 우연한 만남을 넘어서, 서로 다른 정체성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제를 인식하고 공유하는 계기가 된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광장은 이러한 마주침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열린 장이며, 이는 연대의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열어준다.

광장에서는 자신이 기존에 몰랐던 타자의 현실과 문제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접촉은 새로운 의제에 대한 인식과 감정적 공감을 유도하고, 집회 참여자의 관심을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과 타자의 의제로까지 확장시킨다. 연대는 마주침을 통해 형성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연대를 위한 참여가 또 다른 마주침을 낳기도 한다. 이처럼 마주침과 연대는 선후가 분명하지 않은 상호작용의 순환 구조 속에 있으며, 한 번의 연대 경험이 또 다른 의제로의 확장을 이끈다.

결론적으로, 광장의 마주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의제를 매개로 한 상호인식과 실천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집회 참여자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음에도 하나의 연대를 형성하며, 광장은 그런 연대가 순환하고 확장되는 정치적 장이 된다.

광장에서 마주친 불편함

그러나 여러 집회를 돌아보며 마주침이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음을 알게되었다. 연세민주동문회 회원분들과의 대화에서는 트랜스젠더나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의문을 표현하며 불편함을 느끼는 모습이 드러났고, 연구자 중 한 명은 노동절 집회에서 성노동 개념을 처음 접하며 부담을 느꼈다. 세월호 추모제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환경에서 깃발 흔들기를 요구받았던 것에 대한 불편함과 주최측의 의도치 않은 ‘민노총(민주노총을 비하하는 줄임말)’이라는 표현에 대한 불편함, 퀴어 퍼레이드에서 가자지구 학살에 동조하는 국가들의 부스가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 등의 불편한 마주침이 존재했다.

[이미지 6] (왼쪽) 세월호 참사 11주기 집회 이후 트위터(현 'X')에 올라온 반응, [이미지 7] (오른쪽) ��26회 서울 퀴어퍼레이드 이후 트위터에 올라온 반응

연대 기수 C는 집회 중 술 취한 남성의 성희롱, 신체 접촉 문제 등을 겪었고, 여성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남성 패싱 동지 옆에 있으라는 주의까지 나왔다. 외부적 불편함도 존재했다. 경찰, 극우 세력, 유튜버들과의 마찰, 집회 반대 차량의 경적 소음, 욕설, 무단 촬영 등은 집회 참가자에게 불쾌감을 줬다. 특히 연대기수 C는 무분별한 촬영에 민감해 항상 얼굴을 가리고 다녔고, 유튜버가 농성장에서 무단 촬영하다가 제지당한 경험도 있었다. 이처럼 연대를 위한 마주침은 때로 불편한 감각을 동반하며, 집회 내외부에서 다양한 긴장과 충돌을 낳았다.

“C: 특히 구속 취소 이후에 매일같이 집회가 있었던 때는 정말 술 드시는 분 정말 많았고, 유튜버들이 촬영하는 것도 너무 많아 가지고, 촬영하는 것도 정말 가까이 가까이서 촬영하는. 그리고 정말 무분별하게 찍고 행진하면서도 주변을 전혀 보지 않고 딱 화면이 조회수가 나오는 화면만 들여보고 있는다든가, 한 번은 행진 끝나고서 이제 당신 농성장 앞에 와서 다 같이 춤을 추는데 (…) 그 사이에서 유튜브를 찍고 있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위원장님이 (카메라) 치우라고 해가지고 (유튜버가) 끌려 나간 적이 있어요.”

불편한 마주침 다시보기

불편한 마주침은 광장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 다른 의제를 지닌 채 만나면서 발생한다. 이는 연세민주동문회 회원의 트랜스젠더 이해의 어려움, 연구자가 노동절에서 만난 성노동 활동가와의 대화처럼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의제를 접했을 때 나타나며, 자신이 가진 정체성이나 연대 방향과 충돌할 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또한 세월호 추모제에서의 ‘민노총’이라는 표현 사용, 퀴어퍼레이드에서 팔레스타인 연대자로서 느낀 불편함처럼 의제 간 충돌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가 연대를 위해 모였음에도, 무의식적으로 재현되는 차별과 편견, 구조적 위계가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미지 8] 노동절에 연구자가 마주친 낯선 성노동 의제

애나 칭의 개념에 따르면, 마주침은 서로를 오염시키는 중립적인 접촉으로, 변화의 계기가 되지만 그 변화는 항상 긍정적이지 않다. 마주침은 필연적으로 감정의 동요를 동반하며, 때론 불편함이나 거부감으로 나타난다. 연구자가 경험한 ‘성노동’ 의제는 노동,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논쟁적이며, 사회적으로도 의견이 크게 갈리는 주제다. 이는 그 주제가 광장 내에서도 의제 위계에서 뒤처지는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퀴어퍼레이드에서 이들이 참여를 거부당하고, 별도의 ‘노 프라이드 파티’를 열었던 점은 그들이 공식 연대에서 배제된 비주류 중의 비주류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미지 9] 2023년에 있었던 노프라이드 파티

이러한 의제 위계는 단지 집단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서도 작동한다. 개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의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그 외의 의제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는 연구자가 ‘성노동’이라는 의제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던 이유이며, 농민대회에서 한 참여자가 ‘이미 평등한데 왜 평등수칙을 자꾸 말하냐’고 발언한 사례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마주침은 필연적으로 오염을 만들며, 감정의 충돌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이 오염은 단순히 불쾌감을 넘어서 새로운 연대, 저항, 혹은 재구성을 위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다양한 마주침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끊임없이 섞이고 변화해 간다. 이러한 불편한 마주침은 연대의 이상을 도전받게 하지만, 동시에 더 깊은 성찰과 관계 재구성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마주침에서 나아가기

광장은 즐거운 연대를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불편한 마주침이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그로부터 나아가려는 주체들의 시도이다.

A학교 공대위 위원 D 씨는 과거 노조 활동 중 추운 날씨에 짧은 치마를 입은 학생에게 조끼를 덮어주는 행동이, 학생들에게는 동의 없는 불편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을 이야기하며, 이 불편한 경험을 학생들의 피드백과 수용 과정으로 풀어나갔다고 설명하였다.

“D: 그러니까 이 여학생은 노조 간부인 내가 하니까 어려운 거고 대신 그거를 하면서. 내 딴에는 맨 앞에 앉아 있는데 불편해 보여서, 이 여학생이 너무 나는 불편해 보이겠다 싶어서 입고 있던 노조 조끼를 벗어서 이렇게 덮어줬던 게 그 여학생에 대해서 내 딴에는 배려지만, 본인한테는 무시당한 거지. 그거를 나중에 학생들이 ��기들끼리 토론을 해서 나한테 얘기를 해주더라고. 그건 필히 동의를 받아야 되는 과정이고…”

A학교 공대위 위원인 D 씨와 그에 연대하는 시민 E 씨는 현재 광장에서 일어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인 평등수칙과 무지개 학교를 설명했다. 광장은 언제든 불편한 마주침이 생기는 공간이다. 그래서 불편함을 줄이고, 발생시 풀어나가도록 평등수칙이 만들어졌다. 형식적이더라도 평등수칙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으며, 최소한의 안전과 평등한 광장을 공유하는 공동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로가 다르다고 해도, 광장에 선다면 이 공동의 규칙에 함께 동의하는 것이다. 물론 평등수칙이 있다고 해서 완벽한 평등과 안전이 있는 게 아니기에, 연대자 E 씨는 광장에서의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미지 10] A학교 공대위 농성장의 평등약속

더 나아가 무지개 학교는 광장 외부와의 불편함 마주침을 풀어나가려는 시도이다. 공대위는 교육청 앞에서 농성을 해오며, 교육청 직원들과 지속적으로 마주치고 충돌해왔다. 많은 직원이 농성을 그저 무심하게 지나가지만, 몇몇 직원들은 눈을 맞추거나 인사를 하는 등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무지개 학교도 이런 변화를 끌어내기 위하여 교육청 직원들이 퇴근하는 5시 반에 맞춰서 연다고 한다. 이는 교육청 직원과의 다소 불편한 마주침에서 나아가려는 노력이다.

“D: 그래서 교육청 앞에 무지개 학교를 하겠다는 게 교육청 직원들 대상으로 오늘 와서 들어라. 명칭은 무지개 학교라고 하지 요즘에 대세가 다 무지개고. 그렇게라도 좀 해서 뭔가 변화를 좀 만드는 것 같습니다.”

“(무지개 학교를) 5시 반에 하는 이유가 교육청이 직원들이 퇴근하는 시간대에 맞추려는 거야. 그러니까 연대 동지들은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학생들도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요. 이 무지개 학교 주 타깃은 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이 밖에도 불편한 마주침에서 나아가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있다. 대학생 환경운동가 G 씨는 집회 현장의 경찰들을 불편하게 느끼면서도, 그들 또한 제대로 수당을 받지 못하는 체제의 또 다른 피해자로 보며 양가적인 감정을 통해 연대의 경계를 확장해 나간다. 서울 퀴어퍼레이드에서는 혐오 세력의 공격을 웃음과 환호, 인사로 대응하며 불편함을 유쾌한 방식으로 흡수하고, 연대의 에너지로 바꾸어낸다.

마주침에서 비롯된 감각들을 발견과 전환이 일어나는 광장은, 다양한 주체들의 ‘배치’이다. 주체들은 광장에서 고정되지 않은 위치에서 정해지지 않은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관계 맺는다. 서로 어떤 방식으로 무슨 영향을 주고 받을지 정해져 있지 않다. 배치가 가지는 열린 가능성은 예상치 못한 마주침과 감각을 만들어내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배치는 열린 상태이기에, 한 감각과 마주침은 그 상태 그대로 남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광장에서의 불편한 마주침은 불편함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배치로 설명되는 광장 속 주체들의 마주침은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리듬과 패턴처럼 계속 생성되고 과정을 반복한다. 언제나 마주침과 함께 불편함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한편, 그 불편함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가능성도 항상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불편함에서 나아가려는 시도 역시 반복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광장에 나타난다.

광장 속 주체들 사이의 권력과 위계는 완전히 제거할 수 없지만, 배치 ���에서는 억압이 아닌 연대의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남성이 여성 혐오에 반대하고, 비장애인이 장애인 차별 철폐를 외치는 등의 행동은 권력이 타인의 입장에 서서 함께 싸우는 힘으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이런 변화는 불편한 마주침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가능해지며, 주체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어도 연대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이미지 11] (왼쪽) 목에 동덕여대 공학전환 반대 슬로건을 목에 건 김형수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장, [이미지 12] (오른쪽) 안국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다이인 행동을 하는 시민들

결론

본 연구는 2024년 탄핵 집회 현장을 기반으로 다양한 마주침이 광장의 형성과 집회 참여자 간 연대에 미친 영향을 탐구했다. 우리는 참여관찰과 인터뷰를 통해 마주침이 반드시 연대로 이어지진 않지만, 광장이라는 공간이 다양한 주체들이 만나고 상호작용하는 장으로 기능하며, 그 과정에서 연대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마주침에서 비롯되는 불편함조차 광장을 더 넓히고 다양한 이들이 연대할 수 있는 역동적인 에너지로 작용함을 발견했다.

광장에서의 마주침은 새로운 의제와 정체성, 문화를 접하고 생산하는 기회가 되며, 때로는 불편함이나 갈등을 동반한다. 연구는 광장 정치의 역사와 탄핵 집회 현장에 대한 선행연구를 검토한 뒤, 직접 집회에 참여해 다양한 마주침을 경험하고 이를 심층적으로 탐구했다. 이 과정에서 마주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서로 다른 주체들이 상호작용하며 연대와 변화의 순환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핵심적 경험임을 밝혔다. 불편한 마주침 역시 오염과 변화의 일부로, 연대와 불쾌감이 교차하는 복합적 경험임을 시사했다.

결국 광장은 마주침과 불편함, 그리고 나아감이 선순환을 이루는 열린 가능성의 공간으로, 집회 참여자들의 의지와 실천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동력이 된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 대규모 집회가 줄어들더라도, 광장에서의 마주침이 남긴 에너지가 시민들의 신체와 기억에 남아 다시 광장으로 모일 힘을 제공한다고 결론지었다. 광장은 완전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의 부딪힘과 고민, 개선의 노력이 계속되는 한 열린 가능성의 공간으로 남을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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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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