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연구 페이지는 2024-1 문화기술지 강의에서 직접 진행한 연구 내용을 요약, 재배치해 제작했습니다.
오늘날 '청년'의 이미지는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요?
- 연구 참여자들 역시 '청년 문제'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청년 당사자의 위치에서 '청년'의 문제적 재현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기존의 청년에 대한 사회적 범주화와는 다른 형태로 청년의 적극적인 행위자성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현재까지 다양한 '청년 공간'이 형성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서울청년센터'가 지향하는 활동 방향은연구자들의 흥미를 끌었는데요. 서울 청년 센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목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 지역의 다양한 청년을 '서울청년센터'라는 매개를 통해 등장시키는 것,
- 청년이 생활권에 기반한 물적/인적 사회 서비스에 연결되도록 하는 것,
- 청년이 정책 수요자 또는 대상자로만 머물지 않고, 공급자 또는 시민으로서 역할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것
이러한 청년 센터의 지향은 청년이 정책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서 참여하도록 만들며, '청년'이 만들어가는 공간에 대한 지향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청년의 다양한 행위자성과 실천 양상 등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우리의 연구는 지역의 청년들이 만나고 상호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청년센터에 접근하고자 했으며, 그 안에서 '청년 행위자'가 공간 안에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필드에 머물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참여 관찰의 과정은 청년 센터가 표방하는 지향과 현실 사이의 어긋남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청년 센터의 공간성은 다양한 행위자가 등장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라기보다는 '취업을 위한', '보다 공부하기 좋은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으며, 그 안에서 청년은 다시금 정책의 대상으로 환원되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연구의 목적을 전환하여 '청년'의 행위자성이 아니라, 청년 센터 내부에 발생하고 있는 엇박자와 청년 재현의 방식에 작동하는 메커니즘의 작동 방식을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우리 연구는 다음의 연구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함으로써 '청년 센터' 내부의 공간성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청년 센터'라는 공간 내부에서 '청년'의 이미지는 어떻게 경합하고 있는지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 청년 센터 안에서 청년은 어떠한 이미지로 재현되는가? 이때 배제되는 이들은 누구이며, 일련의 경계 짓기 과정을 통해 '청년'의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청년 센터는 청년의 요구와 문제의식을 공간 안에 어떠한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는가? 이 과정에서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 청년 센터 내부의 공간과 그 안의 행위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해 왔는가? 이러한 변화에는 어떠한 방식의 위계와 저항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가?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연구 방법을 토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기간상의 한계로 인해 접근의 용이함과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청년 센터 A를 중점적인 필드로 하여 수시로 참여 관찰을 진행하였으며, 연구 참여자들이 직접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때 여건상 인터뷰 진행이 어려운 경우, 설문을 진행하거나 관련 연구자의 경우, 질문지를 보낸 후에 답변을 메일로 받는 형식으로 진행하였으며, 우리가 만난 인포먼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청년 센터 관계자, 설계 담당자, 청년학 연구자, 청소년 공간 관계자, 청년 센터 이용자 등 청년 센터의 공간성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거나 혹은 공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사람들과 접촉하여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이를 통해 '청년 공간'의 공간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읽어내고자 했습니다.
"파편화되려는 청년, 일원화하려는 정책"
1) 청년의 개념적 범주화
'청년'은 한국 사회가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적 주체'로 호명되었으며, 이러한 청년을 일련의 '세대'로서 기획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세대'라는 집단 범주는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객관적인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상상된 집단이며 구성된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청년 세대'라는 일원화된 기표로 호명됩니다. 그렇다면 개별적인 존재들을 단일한 집단으로 호명하는 방식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요?
청년 세대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은 개념의 외연이 시대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시대에 따라 청년에게 요구되는 '청년상' 역시 다르게 나타났을 것임을 추론해 볼 수 있는데요. 이에 따라 서울 청년 센터라는 필드에 진입하기 이전에 한국 사회가 청년을 어떠한 방식으로 호명해 왔는지를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청년’이라는 주체가 집단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1920년대 이래로 청년 이미지의 변화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20년대 초반: 근대 국민국가를 위해 동원되어 민족을 계몽하고 조직화하는 주체
1920년대 중반: 미��를 준비하는 세대, 계급의 역할이 강조되며 사회운동 방면에서의 역할 약화
1930년대 후반: 고뇌하고 방황하며 고통받는 젊은이, 사회의 병적인 존재이자 국가의 부속품
해방 이후~1960년대: 국가의 부속품에서 역사의 주체로서의 청년 이미지 회복
1970년대: ‘청년 문화’ 풍조 확산, 소비 주체로서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세대적 표현으로 등장
1980년대: 이전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을 포괄하기 위한 세대적 기획으로 ‘청년’ 개념 부각
1990년대: 다변화된 정체성 속에서 각각의 삶을 영위하는 개별적 존재
1990년대 말: (IMF를 지점으로) 우리 사회의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가난한 계층
2010년대 중반: 청년의 문제적 이미지가 아니라 그 안에 내재한 삶의 역동성을 통해 청년을 새롭게 기획해야 한다는 목소리 등장
‘청년’이라는 개념은 한국 사회에 등장한 이래로 계속해서 변화해 왔지만, 해방 이후 부여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개별자로서의 이미지에 가장 큰 충격을 가한 사건은 IMF라고 하는 경제 위기였습니다. 연구 진행 중 만난 인포먼트 중 1990년대에 ‘청년’의 삶을 살아왔던 인포먼트들은 다음과 같이 발화하며, 청년 이미지의 변화를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이라는 건 그때는 젊은이들이 뭘 좀 일을 내겠는데. 좀 다르게 하겠는데,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근데 IMF가 왔네요. 1997년 말에 그러니까 사실은 그렇게 쭉 갔으면 청년들이 좀 견인해서 가는 그런 구조가 조금 안착될 수 있었는데, (IMF가) 딱 오니까, “야, 일단은 모르겠고 하던 대로 해”가 된 거예요.” (인포먼트 F)
즉, 사회 전반에 걸친 경제적 혼란 속에서 ‘실업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발생한 청년층의 좌절과 절망감이 사회를 바꾸어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인데, 이에 따라 ‘청년 문제’가 청년을 다루는 중요한 요소로 다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청년을 호명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이렇듯 청년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간과한 채 ‘청년 문제’를 통해 청년을 일원화된 기표로 만들려는 기획들에 대해서는 무수한 비판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정책적 수치화와 정형화되는 청년 공간"
2) 공간의 수치화와 부여되는 청년 이미지
청년 당사자 운동은 청년 안에 내재한 삶의 역동성을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내야 하며, 그에 기반하여 '청년'을 기획해야 한다는 학문적 실천 과정에서 등장했습니다. 청년 당사자성을 중심으로 '청년학' 연구를 진행해 온 인포먼트 E는 청년학을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청년들 안에서도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요구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단순히 숫자로는 치환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존재하며, 기존에 '청년'을 정책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비가시화되는 지점들이 있다"
인포먼트 E 이외에도 '청년'의 문제를 당사자를 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청년 활동가들이 모였으며, 서울시에서는 박원순 시장의 취임을 기���으로 새로운 형태의 청년 정책 실험들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박원순 시장님 같은 경우에는) 영등포에도 청년 네트워크 운동, 마을자치 운동,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여건들 이런 걸 조성해 주셨고,(2015년 쯤에) 청년들이 이제 자기들이 모여가지고 해커톤, 해커처럼 정보를 수집해 가면서 하는 회의를 해커톤이라고 그런대요. 그래서 이렇게 노트북 딱 놓고, 우리가 필요한 게 뭐냐 하면서 막 검색하면서 밤새 이렇게 활동을 했었나 봐요. 그러면서 이제 나왔던 게 청년들한테는 네 가지 자리가 필요하다." (인포먼트 G)
이른바 '해커톤'이라는 방식을 통해 서울시는 취업 문제 이외에 청년의 삶 전반을 포괄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자 했으며,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청년정책 기본계획 [2020 서울형 청년보장, Seoul Youth Guarantee>]입니다. 이 정책은 청년의 삶을 종합적으로 인식하려는 시도 위에서 수립된 만큼 청년 문제를 삶의 영역에서 다각도로 살핌으로써 '청년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분류 방법 중에서도 '공간에 대한 제공'이 청년의 놀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관점으로부터 '청년 공간'의 필요성이 촉발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공간은 청년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자 서로 돕고 배우며 활발히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청년 활동의 거점 공간의 역할을 표방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교체와 더불어 '청년 공간'의 기능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가장 중대한 변화는 '청년'과 '청년'이라는 개별적인 존재들이 만나는 사적인 장소가 아니라, '청년'과 국가의 '정책'이 만나는 공적인 공간으로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사적인 공간에서 공적인 업무 공간으로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업적 중심의 타협적인 분위기로의 공간 변화를 수반하게 됩니다. 공적인 업무 공간에서 청년센터는 '실적'이라는 지표 안에서 다시금 수치화된 형태로 등장하게 되며, 그 과정은 공간의 경직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청년 센터를) 피라미드식으로 짜려고 이제 하고 있는 중인데, 어떤 큰 틀에서의 정책을 내려보내는 그런 정책 전달 체계로서의 역할을 좀 더 이제 하게 되는 그런 구상 속에 있기 때문에 개별 센터들이 좀 차별화된 뭘 하기는 좀 더 힘들어진 상황이 되고 있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인포먼트 E)
성과의 정량적 측정 과정에서 청년센터 운영자의 역할은 성과 지표 아래 제한된 형태로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이때 청년센터의 공간성은 '특정한 장소'로서의 역할을 부여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무중력지대에서 서울청년센터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청년 공간에 대한 정책적 호명 방식은 '수치화'라는 방식으로 공간을 구획해 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청년은 다시금 정책의 '대상'이자 해결해야 할 사회의 문제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니즈와 위계화되는 공간"
1) 청년 니즈와 공간성의 변화
시대가 변화하며 청년들의 니즈 역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박원순 시장 당시 청년들은 일���리, 놀자리, 설자리, 살자리를 요구했지만, 이후 청년들의 니즈는 점차 생존에 필수적인 일자리, 살자리를 보다 강력하게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무중력지대에서 청년센터로의 전환 과정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긴 공간인 무중력지대는 청년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휴식과 문화 생활을 즐기며,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했습니다. 2019년 10월 2일에 개관한 무중력 지대 C는 공간의 목적부터 컨셉, 디자인, 프로그램 구성까지의 전 과정이 지역 청년들의 적극적인 참여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청년들은 커뮤니티 활동과 취미,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을 요구했고, 이러한 요구들이 반영된 무중력 지대는 현재의 청년센터보다 자율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반면 청년센터의 이용자들은 주로 학업이나 취업 준비를 목적으로 해당 공간을 이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센터 관계자 A는 개인 학습이나 작업을 위해 센터를 찾는 청년들이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청년센터 이용자들은 여가 및 문화생활보다는 학업과 취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청년센터는 무중력지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구조는 상당히 유사하지만, 청년센터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사라진 공간들 역시 존재합니다. 오프라인 창작활동 공간인 ‘창작 지대’나 공연 공간 등 ‘쉼’을 강조하는 공간은 유지되지 못했으며, 공부하는 공간의 비중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센터 운영자 측은 코로나 19를 원인으로 꼽으며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해 센터가 본래 목적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오프라인 활동이 제한되고 사용 공간도 한정되면서 여가와 문화, 소통의 장으로서 청년센터가 충분히 이용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차 개별적인 학습의 공간으로 센터의 공간성이 정해지기 시작했으며, 이용자 간 교류도 단절되었다는 것이 센터 측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코로나 19 등을 이유로 잘 사용되지 않는 공간을 없앤 것 역시 운영자들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무대 공간을 없앤 운영진들의 결정은 청년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청년센터가 '학습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 행위자별 니즈와 공간 내부의 위계화
(1) 센터와 청년 간 위계
청년센터가 표방하는 청년센터의 역할 중에서는 ‘청년 당사자성’이 있습니다. 청년이 정책의 수요자 또는 대상자로만 머물지 않고 공급자로서 역할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센터 측은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 구글 폼 설문조사 등을 통해 청년들의 의견을 상시 수집하고 있었으며, 청소함(청년들의 소리함)을 배치해 두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센터 측이 청년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원하는 청년센터의 모습과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청년센터의 모습 사이에는 일종의 어긋남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청년센터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청년센터는 학습 외���도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편안한 공간, 문턱이 낮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부분 지나치게 학습 위���의 공간이 되는 것은 청년센터의 설립 목적에 어긋난다고 여기는 모습 역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이상과 달리, 실제로 청년센터를 이용하는 청년들은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 나가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청년들은 취업 준비 혹은 개인적인 학습 목적으로 방문하고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자그마한 소음도 눈총을 받게 되는 다소 경직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한 청년센터 관계자는 이 현상을 ‘스터디 카페화 현상’이라고 명명하며, 이러한 현상이 대다수의 청년센터에서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이라고 설명합니다.
연구 과정에서 진행했던 이용자 설문조사,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스터디 카페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청년센터에서 취업 준비, 공부, 독서, 과제 등을 한다고 답했으며, 일부는 음악 소리가 사람들의 소음이 방해된다고 여기고 있었는데요. 소음이 적고 콘센트가 많은 2층 좌석의 선호도가 높았으며, 타 카페들과 달리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을 큰 장점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좀 더 편안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목소리 또한 존재했지만, 이는 극소수였으며 현실은 모두가 공부하는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운영자들은 이러한 어긋남을 마주했을 때, 이상과 현실 간에 적당히 타협하되 센터의 설립 목적에 더 맞는 방향으로 운영하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청년 당사자성이 중요하긴 하나, 설립 목적이 스터디카페가 아님이 분명하니 지나치게 경직된 분위기는 좋지 않다는 입장을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청년 이용자들과 센터 관계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위계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운영진 입장에서는 센터의 목적에 맞게 운영하기 위한 선택이나, 결국 공간 운영 과정에서 청년들의 요구보다는 운영자들의 의견이 더욱 반영되고 있음을, 운영자들에게 최종 권한이 있음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청년들의 부족한 적극성 또한 청년 당사자성이 잘 실현되지 않는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청년들의 피드백은 대개 민원 수준의 의견이 대다수이며, 운영 방향성에 대해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어도 사소한 문제만을 언급하는 데 그칩니다. 결국 청년들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 참여할 여지가 적으며,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적극성을 띠는 청년들이 많지 않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관과 센터 관의 위계
더불어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한다는 청년센터의 특성상 위탁 업체와 서울시 사이에도 위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들어 서울시는 청년 공간을 개편하는 과정에 있으며, 위탁 업체의 운영 성과를 평가하는 성과평가 기준들을 또한 대폭 늘리고 있는데, 이러한 성과에 대한 ‘평가’는 관이 청년센터의 운영 과정을 통제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평가 점수를 바탕으로 등급을 매기는 데 그치지 않고, 서울시 소재 센터들의 순위를 매기고 있으며, 이때 서울시가 요구하는 기준은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센터와 서울시 간의 위계는 공간 운영의 부담에 그치지 않고,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함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칩니다. 2023년 서울청년센터 위탁기관 모집 공고에 따르면, 서울시가 운영 중인 4개소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사업제안서와 발표 자료 등을 제출해야만 합니다. 이때 사업제안서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과정인데, 이때 청년들의 의견보다 서울시의 입장이 반영된 아이디어들이 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탁 기관으로 선정되어야 ��는 법인은 서울시 측에서 필요하다 여길 제안인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포먼트 G는 이 부분을 지적하며, 아이디어 선정 과정이 청년 당사자성보다는 ‘투자’에 가깝고, 청년센터에 청년 당사자성이 생각보다 잘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청년의 존재론적 고민과 공간 사이 어긋남
1) 현세대 청년의 자기 인식
오늘날 청년들이 청년센터를 자유로운 쉼이 아닌, 학업과 일의 연장선으로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센터를 둘러싼 청년과 운영진 간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 간극을 이해하기 위해 저희는 온라인상에서 청년들이 '청년세대'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 분석했습니다.
청년세대와 관련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 청년세대는 스스로를 바쁘고, 희망없고, 불쌍한 세대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고도의 성장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과도한 덕목, 경제적 어려움과 부의 대물림, 그로 인한 기회의 불평등은 그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특히나 취업에 대한 압박은 한국 사회에서 '실업'이라는 문제가 청년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하게 만듭니다.
"아무래도 저는 취준생이다 보니까 취업이 가장 힘든 부분이지 않나.. 대부분 미래 걱정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크죠." (인포먼트 J)
"제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까 그냥 취업, 다들 취업이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여기 취업활동하러 오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인포먼트 L)
오늘날 청년들에게 전통적인 생애 주기의 의미는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청년 세대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이행기 과업을 완수하는 시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지연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비교적 정형화된 수순을 밟은 기성세대와 달리, 현 청년세대는 유예상태를 지속하며 안정된 성인기로부터 배제되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이러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반복하고 열중합니다. 특히 현재의 청년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개량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정상궤도로부터 이탈하는 순간 이전 세대보다 더 직접적으로 개인의 정신 건강에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존적 위협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여가와 문화, 사회적 관계 형성 등 당장의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1) '청년 대표성'의 경합과 공부하는 청년
청년센터 내부에서는 공간 분위기에 변화를 줌으로써 보다 역동적인 장소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존에 센터를 이용하던 주류이용자층에 불만사항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좀 소극적으로 음악이 마음에 안 들어요. 시끄러워요. 밑에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서 스터디카페처럼 저희가 조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왜 음악이 가사가 나오면서 여기서 막 시끄럽게 사람들이 떠들고 있죠? '청년 공간은 그렇습니다.'라고 설명을 해도 그동안 이제 운영했던 것들 때문인지 도서관이라고 생각을 해.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인포먼트 C)
실제로 '소리'에 변화를 준 당일에 민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주류의 이용자들이 공간을 마치 '스터디 카페'처럼 점유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에 대항하기 위한 센터 내부의 저항 역시 존재합니다. 민원 사항에 대해 "청년 공간은 원래 그런 공간"이라는 센터장의 설명은 센터를 스터디 카페로 획일화시키려는 일련의 시도에 대한 저항의 한 양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량적 평가 체제하에서 센터가 추구하는 바는 어디까지나 평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만 진행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공간은 파이를 차지한 주류의 사람들에 의해 획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청년센터의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권한'은 운영진에게 있지만, 공간성을 결정짓는 '대표성'은 정책 결정자와 주류 청년 집단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센터 운영자는 스터디카페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온전히 배제하고 본래 의미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없는 딜레마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한 인포먼트는 '청년'을 둘러싼 정책과 행위자성이 대표성의 경쟁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당사자성도 당사자성을 둘러싸고 누가 청년을 대표할 것인가에 대한 경쟁이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결국 그 행위 자체가 내가 청년을 대표해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는 어떤 그런 욕망이기도 하고, 당사자의 몫으로 주어진 쿼터에 대한 경쟁이기도 하고, 그런 구조가 역설적이라면 역설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인포먼트 E)
청년공간을 만들어간다고 할 때 어떤 청년이 주류를 이룰 것인지는 결국 '누가' 청년을 대표하는가의 논의로 귀착됩니다. 이때 주류가 아닌 다른 행위자들은 상대적으로 비가시화되며, 그 과정에서 공간성은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는 선에서 확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2) 정부의 지원 부족과 공간의 경직화
정부 지원 부족은 청년 공간이 경직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시장 교체 이후 서울시는 청년 공간을 통폐합하고 청년 공간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으며, 점차 서울시의 예산 부담 비중을 줄여 나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2022 서울시 예산서에서 미래 청년 기획단의 세출예산 자료에 따르면 지역별 서울청년센터 설치 운영비는 21년 기준 약 68억 7700만 원에서 22년 약 32억 2500만 원으로 절반에 가까운 36억 5100만 원가량이 축소되었습니다. 2024년 현재 청년 교류 공간은 운영이 종료되었고, 청년 허브는 청년 활동 지원 센터로 통합되었으며, 6개의 무중력 지대 역시 청년 센터로 전환되거나 운영이 종료되었습니다.
센터의 역할 역시 '청년정책 전달 체계'로 규정됨에 따라 과거의 ‘놀자리’ 영역 안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정책을 전달하는 공적 장소로서의 공간성이 부여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청년센터를 전달체계 이상의 여가와 문화, 네트워크 형성 등의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발전시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연구를 마치며
기존의 '청년 연구'는 청년들이 처한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거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공간'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에 본 연구는 서울청년센터라는 공간을 바탕으로 청년들이 모이는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청년과 정책은 어떻게 만나고 상호작용하고 있는지를 관찰하였습니다.
그 결과 공간의 지향과 재현되는 공간성 사이의 어긋남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이는 청년센터를 둘러싼 복수의 이해관계를 살핌으로써 가능했습니다.
복수의 행위자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에 대한 이해는 '서울청년센터'가 놓여있는 공간적 재현 방식을 두텁게 바라보려는 시도이며, 해당 연구는 그러한 청년 공간에 대한 기초 연구로서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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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소개
해당 웹페이지는 2024년 1학기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의 문화기술지 수업에서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김현지, 서민영, 이경민, AYDIN ALI가 제작하였습니다. 연구와 관련하여 문의 사항이 있으시다면 (jiya0126@yonsei.ac.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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