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1.1 연구배경
(1) 군 상담의 필요성 및 상담자의 역할
군대는 국가방위라는 막중한 사명으로 조직된 특수사회인데, 이와 같이 경직된 계급구조로 이루어진 군 조직에서 병사들은 상하간, 혹은 동료간의 관계에서 긴장이나 불안 등을 경험하기 쉽다. 또한, 군대는 대부분 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는 20대 청년층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이들은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자아정체감 형성, 진로 및 취업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 이성에 대한 관심과 성적 욕구 등 청년기에 마주하는 복합적인 문제들도 함께 맞닥뜨리게 된다.
이에 군대는 현재의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제도(2009)’로 발전하게 되는 ‘장병기본권 전문상담제도’를 2005년부터 도입하여(권오열, 고홍월, 2015) 병영문화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고자 했으며, 이에 따라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은 정기적인 장병 상담 외에도 사고예방 차원에서의 상담과 간부 및 상담병의 상담 교육 등 다양한 업무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이는 곧 상담자 개인이 내담자와의 상담뿐만 아니라 그 사전 과정과 후속 과정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주목할 점은 이때 상담자의 전문적 자질 외에도 개인 성장과정이나 치료 및 상담 경험과 같은 “상담자와 관련된 모든 변인들이 상담 결과에 영향을 준다” (김향란, 손은령, 2021)는 것이다.
(2)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제도의 도입 배경
국내 군 상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최초로 군 상담이 시작된 시점은 1990년인데, 당시에 이루어졌던 상담은 종교적인 특색이 강하여 공식적인 상담 체계를 갖추지는 못하였다(주효균, 2016). 공식적인 군 상담 제도의 도입 및 군대 내 인권 개선의 필요성은 결국 2005년 우리 군에서 발생한 ‘GP총기난사사건’ 및 기타 가혹행위 사건을 계기로 대두되었다. 이에 대하여 국방부는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같은 해에 ‘장병기본권 전문상담관 제도’를 도입하였고, 해당 제도는 2009년부터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제도’로 발전했으며(권오열, 고홍월, 2015), 제도에 의하면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은 군대 내에 상주하면서 장병 군인가족에 대한 사회복지 관련 상담, 복무 부적응 병사 식별 관리 및 상담, 그리고 군 간부 및 상담병에 대한 상담 교육을 제공하게 된다(국방부훈령 제1059호 제 1장 제17조). 이들은 민간경력자와 군 경력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후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제도’는 나날이 발전하여 도입 당시 불과 9명이었던 전문상담관은 2022년 8월 기준 총 630명(83%가 여성)까지 확충되었다.
한편,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제도’의 도입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2009년 ‘장병기본권 전문상담관 제도’가 현재의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제도’로 발전하였는데, 이때 상담관의 명칭이 ‘장병기본권’ 전문상담관에서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으로 개칭되면서 국방부가 정의한 이들의 역할 역시 재조정되었다. 주호균(2016)에 따르면 2008년 ‘장병기본권 전문상담관 제도’는 장병들의 기본권 확립을 주된 목표로 설정하여 국방부 인권팀 및 각 군 인권과의 지휘 아래에서 전문상담관을 관리하였는데, 제도의 목적이 '사고 예방'으로 설정되면서 운영 책임이 2009년부터 국방부 병영정책이 주관하는 각 군의 군 인사참모부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처럼 전문상담관의 역할이 ‘장병기본권 보장’에서 ‘악성사고 예방’이라는 역할로 전환된 것은 곧 군 상담이 개인적인 차원보다는 조직적인 차원에서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군 상담은 일반 상담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1.2 문제제기 및 연구의 필요성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제도’는 처음으로 체계적이며 공식적인 군 상담 시스템을 마련하고 민간전문상담인력을 활용한 전문적인 상담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제도’는 여전히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먼저, 전군의 군 상담에 핵심적인 틀을 제공하는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운영에 관한 훈령』은 군 상담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 개괄적으로만 규정하고 있는데, 해당 훈령은 군 상담이 추구해야 할 정체성이나 상담의 접근방식, 혹은 구체적인 상담기법 및 상담 교육체계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지는 않고 있기에 군 상담 체계 및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한 실정이다.
다음으로 문제되는 것은, 현재 군 상담 업무체계의 주를 이루는 인력은 전문상담관이 아닌 군 간부들이라는 점이다. 전문적인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은 연대급에 제한되어 있으며, 각 상담관이 배정받은 내담자의 수가 이미 압도적으로 많기에 각급부대에서 도움을 요청한 병사들을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이 일일이 상담하기란 불가능하다(구승신, 윤호순, 2016). 이러한 체계 속에서 군 간부들은 상담자이자 군 간부라는 이중역할을 수행하면서 상담 과정에서 내담자인 부하와 수직적인 관계를 이루게 되고, 이들은 간단한 상담 교육만을 이수하였기에 상담자가 갖추어야 할 전문적 자질을 갖추지 못하여 상담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구승신, 윤호순, 2016). 이에 따라 본 연구는 병영생활 전문상담관과 심층인터뷰를 진행하여 내담자인 병사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이루며 전문적인 상담을 수행하는 이들의 내러티브가 가져올 수 있는 함의에 주목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제도’의 주요 수혜자가 되는 병사들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군 상담을 어떻게 지각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상담자인 장병들이 직접 경험하고 지각한 군 상담에 대한 내러티브적 연구는 아직까지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군 상담에 관한 연구가 지니고 있는 한계 중 하나는 군 조직의 위계적인 구도와 외부와의 단절성으로 인한 조사환경 및 연구방법의 한계이다. 한국군사회복지학회에서 출간한 학술지에 의하면 “사회복지의 한 분야로서 군사회복지에 관한 국내외 연구들은 사회복지의 다른 분야들에 비해 아직도 많이 부족”(박경일, 이귀제, 2009) 한 것이 실정인데, 이는 군 조직의 폐쇄성으로 인해 그동안 이루어진 군 상담과 관련한 국내 연구들이 대부분 설문지 조사를 배포하는 형식으로 수행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이론적 배경
(1) '사람됨'에 대한 이론: 무엇이 '사람'인가?
a) ‘사람’의 개념
‘인간'과 ‘사람'의 개념은 흔히 혼용되고는 하는데, 두 개념은 분명 명확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우리를 상정하는 반면, ‘사람’은 태생부터 적용되는 생물학적 개념과는 달리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일종의 자격”(김현경, 2015)이다. 다시 말해, ‘사람됨'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부여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에 대하여 사회학자 고프먼은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의례"(Goffman, 1983)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곧 사회가 부여한 ‘사람됨'의 조건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고프먼은 이러한 ‘상호작용 의례’가 현실에서 반드시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으며, 이러한 현상은 특히 그가 소개한 “총체적 시설”(김현경, 2015)이라는 개념의 폐쇄적인 공간에서 자주 확인된다.『사람, 장소, 환대』를 저술한 김현경에 의하면 ‘군대'라는 공간은 개인의 인격을 부정하고 자아를 훼손시키는데 기여하며, 이러한 과정은 국가에서 허락한 ‘훈련'이라는 이름 하에 합리화되어 군인을 단순한 무기와 같은 “사물로, [혹은]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으로"(김현경.2015) 강등시킨다고 한다. 군대에 들어간 개인은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마치 수용소에 감금된 재소자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은 하나의 인격체보다는 군의 존립 목표인 ‘국가방위'를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동질적인 도구로 대상화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있는 존재'에서 ‘살아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장병들의 내면적 욕구는 분명히 존재하며, 본 연구는 바로 이처럼 ‘사람됨'을 감각하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을 ‘군 상담'이라는 매개를 통해 주목하고자 한다.
b) '사람'이 아닌 것 1: 사회적 낙인과 감시
외부사회와 질적으로 다른 '군대'라는 공간에서 '사람됨'의 개념은 다르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군대라는 시설의 ‘재소자’인 장병들은 철저한 위계질서와 조직 내 권력 규범으로 인해 매우 약한 수준의 상호성만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들은 특히 ‘군대의 철저한 감시 체제’를 통해 ‘사람됨’의 감각을 잃게 된다. 장병들은 군대에 입대함과 동시에 철저한 감시 체제(소지품 검사, 청결 검사, 개인의 신념에 대한 고백의 강요 등등) 속에서 개인의 행동을 통제 받게 되며, 여럿이 같은 생활관에서 생활하도록 하거나 공개적으로 처벌을 주는 등의 강제적 조치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을 일상적으로 침범하여 장병들의 인격과 고유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병들은 여전히 ‘사람됨’을 갈망하며 ‘사람’ 노릇을 하고자 한다. 이들은 군대 내부에서 ‘나름대로의 사람됨’을 감각하고자 군대라는 사회가 부여한 조건을 수행하고자 하는데, 이를 충족하지 못하여 ‘사람이 아닌 것’으로 분류된 개인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 되어 배제를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회적 낙인은 정확히 무엇이며, 이는 어떻게 ‘배제’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일까? 고프먼에 의하면 낙인은 ‘심각한 불명예를 초래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하며(Goffman, 1968), 의료사회학자 Parker와 Aglleton(2003)에 의하면 낙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게모니’ 개념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서 ‘헤게모니’는 “지배적인 의미와 가치를 구성하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권력의 복합물”로 정의된다(Parker, 2003). 즉, 권력에 의해 형성된 지배적인 가치가 무엇을 ‘정상’ 혹은 (불명예를 초래하는) ‘비정상’으로 정의할지를 설정하며 낙인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헤게모니의 개념은 여기서 더 나아가 낙인의 대상자가 권력이 만든 가치를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하는 과정까지를 포함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봤을 때, 군대 내의 장병들은 군대의 지배가치인 ‘국가방위’에 부합한 모습을 보이지 못할 때에 ‘부적응 병사’라는 불명예의 꼬리표를 달게 되며, 이때 이들은 조직 구성원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는 낙인의 대상으로 기능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 '사람'이 아닌 것 2: 몸의 정치학 및 젠더 정치학
군대 내부에서 ‘사람’ 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군 조직’이라는 권력과 결부되는 지배적인 가치, 즉 ‘국가방위’라는 가치를 실천해야 하는데, 이러한 지배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군대 내부에서 요구되는 조건은 ‘남성성’에 대한 논의로 귀결될 수 있다. 군대 내에서 ‘오염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대체로 ‘남성성’의 보유 여부인데, 이때 ‘남성성’을 상실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낙인의 대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군대는 사회적으로 미성년자 남성이 성인 남성으로 재탄생하는 ‘제2의 학교’이자 성인 남성의 ‘통과의례’적 공간으로 여겨지며, 이는 특히 2021년 병무청 홍보영상에서 등장한 “군대 다녀와야 당당한 남자”(한겨레, 2011)라는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처럼 무의식 중에 내재화된 ‘군인=남성성’이라는 등식은 알튀세르가 주장하였듯이 군대가 억압적인 기구일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기구(이영자, 2005)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에 따라 군대에서 ‘남성성’을 획득하지 못한 개인은 ‘오염된 것’, 혹은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어 모욕을 당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순수와 위험』을 저술한 메리 더글라스의 ‘오염의 정치화’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메리 더글라스는 오염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단순히 외형적인 혐오감이나 위생적인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오염의 기준이 사회 통제와 연대감 증진을 위해 ‘상징’적으로 선택된 것이라고 하였다(더글라스 메리, 2005). 즉, 군대의 경우에도 ‘국가방위’라는 지배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군 조직을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기 위해 ‘남성성의 결여’를 오염의 기준으로 설정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오염의 기준이 얼마든지 필요에 의해 재설정될 수 있다는 것이며, 군 밖 사회에서는 ‘오염된 것’으로 인식되지 않던 이들이 군대 내에서는 부적응 병사 또는 관심병사로 오염된 낙인, 혹은 ‘사람이 아닌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2) 조직문화에 대한 이론
a) 조직침묵에 대한 이론
군상담에는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을 비롯한 군대 조직 구성원들간의 소통과 공감, 교류와 이해가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데, 여기서 공감과 이해는 소통과 교류가 자유로울 때 비로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경직된 군 조직은 지금까지 병사들이 목소리를 내기조차 어려운 구조를 형성해 온 것이 실정이다. 오랜 시간 유지되어온 군의 이러한 전통적 구조는 Morrison & Milliken(2000)의 ‘조직침묵(organizational silence)’의 개념을 적용하여 이해할 수 있는데, 조직침묵이란 문제인식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발언의 파장을 우려하여 발언을 하지 않는 집단적인 현상(고대유, 2014)을 의미한다. 조직침묵은 다시 발언의 효력을 기대하지 않는 ‘체념적 침묵’과 부정적 결과를 우려하여 발생하는 ‘방어적 침묵’으로 구분되는데, 두 유형의 침묵 모두 위계적이고 권위적이며 하향식의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구조에서 주로 확인된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군대에서는 이러한 조직 침묵 현상이 보편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본 연구는 위계적인 군대 내에서 병사들이 어떠한 구체적인 요인들로 인해 조직 침묵 행동을 경험하게 되는 것인지, 또한 이들이 공유하는 조직 침묵 현상이 군대 내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파악하여 형식적인 평등과 실질적인 불평등 간의 괴리를 면밀히 분석해보고자 한다.
b) 조직공정성 및 조직시민행동에 대한 이론
조직 공정성이란 조직 구성원인 개인이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공정하게 지각하는 정도를 말하며(이우석, 2019), 해당 개념에 의하면 조직적 차원에서 절차를 시행할 때에 각 구성원의 발언이 중요하게 고려될 경우 각 구성원이 느끼는 조직공정성의 정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장병의 경우 자의에 의해 군 입대를 한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지점에서 조직공정성은 장병의 군 생활에 있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실제로 김진아(2014)는 육군병사들의 군 조직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높을수록 군생활 적응이 높아진다는 결과를 도출하였는데, 반대로 군 조직이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거나 공개하지 않은 채 결정을 내리는 것, 혹은 병사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는 것 등의 방식은 불공정성 인식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며 군생활부적응으로 연결되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이와 더불어, 조직시민행동 역시 조직행동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신금석, 2012). Katz(1964)는 조직이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구성원은 조직이 요구하는 수준의 ‘역할 내 행동’ ��� 수행하는 동시에, 역할 이상의 혁신적이고 자발적인 ‘역할 외 행동’을 수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며 ‘조직시민행동’ 개념을 제시했다. 이러한 조직시민행동은 “조직에 속한 동료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주고, 협동하며,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제반 활동”(신금석, 2012)을 말하며, 이러한 조직시민행동은 조직의 운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조직에서 부여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개인의 재량 하에 자발적으로 조직 구성원을 위해 부차적 행동을 하는 것은 조직의 효과적 운영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군 내 장병들도 군에서 의무적으로 운영하는 상담 및 복지 시스템 외에도 자발적인 차원에서 조직시민행동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때 이루어지는 상호작용과 사회적 지지는 장병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군에 적응하는 데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3. 연구 방법
본 연구 주제의 특성상 연구자들의 참여관찰이 어려운 관계로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심층 인터뷰의 대상은 총 17명으로 (1)군 상담에 관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장병들과 (2)병영생활 전문상담관이다. 본 연구는 군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는 장병들과 (비교군으로)상담 경험은 없지만 상담을 받은 장병들을 옆에서 관찰한 장병들을 인터뷰하였으며, 이들은 현재 군 복무 중인 장병들과 전역한 예비역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본 연구는 군대에 상주하며 누구보다도 가까운 자리에서 장병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을 심층 인터뷰하였고, 이러한 시도가 참여관찰이 불가능한 본 연구의 한계를 보완해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본 연구진은 다양한 장병들의 내러티브를 수집하기 위해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카투사 등 다양한 군 출신의 예비역 및 현역 장병들을 인포먼트로 섭외하고자 했다. 또한 직업 특성상 조직 내부의 이야기를 발설하기 어려운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의 경우, 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자 이미 연구진과 라포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는 상담관을 인포먼트로 섭외하였다.
II. 본론
1. 상담제도와 현실의 괴리
(1) 제도의 실효성: 그 의도와 실제의 간극
본 연구의 현역 및 예비역의 인포먼트들은 군 상담의 기능을 일반 상담의 기능인 ‘개인적 차원에서의 고충 해소’와는 다르게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발화에 의하면 군 상담의 실제 기능은 결국 자신이 ‘정상’임을 증명하거나 간부에게 건의할 내용을 건의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들은 심층 인터뷰를 통해 군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기능하는 듯한 군 상담과 몇몇 자질이 부족한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에 대하여 실망 혹은 회의감을 드러내고는 했는데, 대부분의 인포먼트는 결국 해당 제도가 ‘장병기본권 보장’이나 ‘병영문화 개선 및 사고예방’ 중 어떠한 목적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즉, 개인 뿐만 아니라 조직을 위해서도 장병들의 개인적인 고충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군 상담 제도의 실효성이 결국 상담의 주체인 장병들을 인격체를 가진 ‘사람’으로 바라보고 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상담관이 지각하는 상담
군 상담 제도와 현실의 괴리는 무엇보다도 상담관과 장병들이 각각 군 상담을 지각하는 방식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먼저 상담관들의 군 상담에 대한 지각을 이해하기 위해, 본 연구의 상담관 인포먼트인 ‘지구’와 국내박사학위 논문 “병영생활 전문상담관들의 직업적응 경험 이야기”(김향란, 2021)에 등장하는 민간인 병영생활 전문상담관들의 내러티브를 함께 분석하였다. 상담관의 경우 특히 직업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효능감의 정도가 군 상담의 지각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논문에서 등장하는 상담관 정민지와 강여유는 매일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장병들을 배정받고 상담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상담머신 [이나] 현역부적합 서류에 사인하는 도구”, 혹은 “병아리 감별사”(김향란, 2021) 로 인식하였다고 언급했다. 이때 정민지가 사용한 “머신” 혹은 “도구”라는 표현은 곧 ‘인격을 부정당한 사물’을 의미한다. 즉, 상담관 정민지와 강여유는 빠르게 작동하는 군 상담 체계 속에서 수많은 상담을 기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 명의 ‘상담관’보다는 상담 체계를 작동시키는 데에 필수적인 하나의 ‘부품’에 가깝다고 인지했다는 것이며, 본 연구의 상담관 인포먼트 ‘지구’의 경우에도 과중한 상담 업무에 대한 우려를 은연 중에 나타냈다. 인포먼트 ‘지구’의 경우에는 상담관 정민지와 같이 명시적으로 자신을 ‘상담 머신’으로 정의하지는 않았으나, 한 달에 맡는 내담자의 수를 묻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는 것을 망설이던 ‘지구’의 모습은 결국 현재의 과부하된 상담 체계가 문제적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과중한 상담 업무 외에도, 상담관과 협업하는 간부의 자질 역시 상담관이 군 상담을 지각하는 데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관 정민지와 강여유, 그리고 인포먼트 ‘지구’는 실제로 비협조적이거나 상담의 비밀보장 유지에 협조하지 않는 지휘관으로 인해 군 상담의 체계성 및 실효성에 대하여 의문을 품기도 했으며, 이처럼 상담관의 개인적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지휘관과의 협업’의 문제는 때때로 이들의 업무 효능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는 했다. 즉, 상담 이후 이루어져야 할 후속조치에 관하여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휘관의 충분한 협조가 없다면 상담관이 지각하는 군 상담의 효과는 저하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관 정민지와 강여유, 그리고 인포먼트 ‘지구’는 모두 자신의 직업 경험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군 상담에 대한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결국 상담관들은 군 상담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 인지하면서도 이와 같은 문제가 자신의 주도적인 상담과 간부와의 협업 등의 노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상담관과 장병의 군 상담에 대한 지각에 확연한 차이가 발생한다. 또한,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하는 장병들에게 군 상담은 어쩌면 ‘원하지 않는 강제적인 친절’로 여겨질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상담관 인포먼트 ‘지구’는 심층 인터뷰에서 “비자발적인 상담은 없다”고 언급하며 의무적인 상담이 강제성을 띤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녀에 의하면 장병들이 의무적 상담을 통해 상담의 존재를 알게 되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기에 이를 ‘자발적’ 상담이라고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자발 대상이라 하지만, 사실은 자발성 상담을 받으러 오는 거예요 […] 만약에 정말 상담할 게 없[고] 어떤 어려움이 [정말] 없다 그러면은 거기서 그냥 가는 거거든요. 강제적으로 상담을 꼭 받아야 해 이런 건 아닌거죠.” – 인포먼트 ‘지구’
“권유가 아니야. 그냥 무조건 다 하는 거야. ‘얘들아 봐봐 이거 할래?’라고 안 물어봐. 누가 물어봐, 무조건 다 하는 거지 그냥.” – 인포먼트 ‘포도’
‘상담’에 대한 인포먼트 ‘지구’의 이러한 인식에 의하면 비자발적인 상담은 존재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의 주체인 내담자가 지각하기에 군 상담이 ‘강제적’이라는 것은 ‘진정한’ 자발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인포먼트 다수의 발화에 의하면 장병들이 상담실에 방문하는 행위 자체가 주변 선후임 혹은 동기들에게는 ‘상담’을 받는 행위로 간주되며 이를 통해 장병들의 군 생활에 크고 작은 파장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처럼 상담실 밖에서는 ‘상담’으로 인식되는 행위를 정작 상담실 안에서는 ‘상담’으로 정의하지 않는 것은 결국 장병들이 ‘조직의 통합’이라는 이익을 위해 의무적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부정적 경험이나 감정을 부정하는 데에 합리성을 부여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상담관 인포먼트 ‘지구’가 정의한 ‘자발성’은 결국 조직의 지배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장병들에게 임의로 ‘자발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설정된 ‘비자발적인 자발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곧 장병들의 의무적인 상담 과정을 ‘자발성’으로 온전히 환원시킬 수는 없음을 의미한다.
(3) 장병들이 지각하는 상담
군 상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성공적인 상담 경험을 통해 자기효능감과 보람 등의 감정을 경험하는 상담관과 달리, 본 연구의 인포먼트인 장병들은 대체로 상담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군 상담의 본래 목적인 ‘장병기본권 보장’ 및 ‘장병들의 고충 해소’가 현재의 군 상담 체제를 통해 실현되기에는 어렵다고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실제로 경험한 상담은 군 상담의 본래 목적과는 다소 상이한 모습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예컨대 GP에서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는 인포먼트 ‘레몬’은 군 상담이 “상담이라는 명목 하에 [존재하는]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정의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레몬’은 군 상담이 “그냥 공감만 해주고 해결 방안을 제시[해주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군 상담의 실효성을 낮게 평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다른 인포먼트 ‘사과’ 역시 군 상담이 현장에서는 “휴가를 얻어내거나 무언가를 따지고 건의하는” 차원에서 기능한다고 언급하였는데, 이처럼 장병들의 실제 경험을 통해 재현된 군 상담의 모습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군 상담이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제도’가 본래 의도했던 기능으로부터 다소 변질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장병들은 건의 차원에서, 혹은 감정해소의 차원에서만 상담을 찾으며 실제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상담] 쓸데없다 그랬지, 귀찮은데 왜 하냐. 도움도 안 되고. 왜냐하면 우리는 다 정상이니까. 그러면서 약간 상담 받는 건 좀 진짜 문제 있는 거라고 다들 그렇게 봤어.” –인포먼트 ‘포도’
왜곡된 상담의 기능 외에도, 장병들은 군 상담의 주체인 상담자와 내담자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장병들의 내담자에 대한 인식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장병들은 상담을 받는 내담자를 “힘들어하는 사람” 혹은 “상담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정상적’인 사람은 상담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다는 전제가 기저에 깔려 있다. 한 마디로, 이처럼 군 조직 내부에 만연하게 존재하는 ‘상담을 받는 장병은 비정상적이며 문제적인 사람’이라는 등식은 자연스럽게 군 상담을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제도적 장치로 설정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 이처럼 군대 내부에서 만연하게 존재하는 내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장병들이 자발적으로 상담관을 찾아가지 않는 현상에 대한 설명을 일부 제공할 수 있는데, 여기에 더하여 장병들의 상담관에 대한 회의적인 인식 역시 이러한 현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데 뭔가 약간 마음의 벽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게, 이 사람도 결국 일이고 군대 소속이라는 건 다 아니까. 굳이 안 말해도 되는 부분까지는 말 안 하게 ��.” – 인포먼트 ‘사과’
즉, 장병의 입장에서는 간부가 아닌 민간인 상담관도 결국에는 군 조직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대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비롯되는 상담관에 대한 불신은 군 조직에서 민간인 상담관의 위치가 지니는 ‘무능함’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몇 인포먼트는 상담관의 자질 부족—내담자에게 경청하지 않거나(인포먼트 ‘사과 & ‘멜론’) 맥락과 상관없이 종교적 관점에서 설교를 늘어놓는(인포먼트 ‘리치’) 경우—에 의해 상담관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장병들의 군 상담에 대한 지각은 앞서 서술한 상담관의 지각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들은 특히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군 상담의 왜곡된 기능, 그리고 군 내부에서 만연하게 확인되는 상담자와 내담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및 평가에 의해 군 상담을 다소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평가하고 있었다.
2. 감시: "통유리" 속의 상담
(1) 병사-병사 관계에서의 감시 구조
원칙적으로 군대 내에서의 상담은 비밀이 보장되지만, 장병들이 겪었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의 발화에 의하면 장병들은 군 상담을 받는 절차에서 다층적인 감시 구조를 경험하게 된다. 본 연구의 장병 인포먼트들은 군 상담에 대하여 ‘비밀 유지의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는데, 이는 특히 군대의 특수한 공간적 특성—폐쇄성과 제한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병들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일상적인 감시와 노출을 경험하게 되는데, 특히 같은 생활관에서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사적인 영역을 수시로 침범하게 되는 군대의 공간적 특성상 장병들은 서로의 사적인 상담 이력까지도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된다.
“이게 공간적으로 제한이 돼 있다 보니까. 빨리 퍼져. 밑에 주둔지에까지 다 퍼져. 되게 투명해. 그래서 이제 통유리에서 상담받는 느낌. 남이 다 보고 있는 느낌이라 안 받으려고 하지." –인포먼트 ‘레몬’
이에 따라 군은 병사들에게 상담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장병들 간에서 수평적으로 이루어지는 상담 제도, 즉 ‘또래 상담병 제도’를 도입하였다. 본래 해당 제도의 취지는 상담관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병들이 또래 상담병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 고충을 편하게 털어놓도록 돕는 것이었는데, 주목할 점은 본 연구의 인포먼트들에 의하면 또래 상담병은 역설적으로 여러 장병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위협이 되는, 여전히 거대한 감시체제의 일환으로 인지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장병들 간에 존재하는 감시 체제는 앞서 서론에서 언급한 고프먼의 ‘총체적 시설’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루어진 ‘입대’라는 과정에서 장병들은 마치 ‘수용자’와 유사한 위치성을 가지게 되는데, 이때 이들은 군대의 지배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층적인 통제와 감시를 받게 된다. 더욱이 군대는 기타 ‘총체적 시설’에 비해 휴가와 면회 등이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장병들에게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또래 상담병 제도’는 감독자의 온전한 감시와 통제 하에서 관리될 수 없는 장병들을 효과적으로 (또한 은밀하게) 감시할 수 있는 "cctv"(인포먼트 '참외')와 같은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병사-병사 간에는 또 다른 형태의 감시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본 연구의 인포먼트 중에는 행정병이었던 장병이 여럿 있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행정병이 행정적 시스템상 다른 병사들의 상담 경험��나 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고 고백하였다. 결국 행정병은 ‘감독자’의 ‘조수’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장병들의 내밀한 정보를 손쉽게 감시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 것이며, 이는 곧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관계로 여겨졌던 병사-병사의 관계에서도 권력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음의 편지를 언급하며] 누가 신고했는지 안다는 게 문제야. 신고를 하잖아 그럼 경위서라는 걸 써요. 그럼 보통 피해자와 가해자가 각각 경위서를 쓰잖아. 당연히 쓸 거 아니야. 그러면 이게 행정병도 있고 중대장실에 출입하는 병사들도 있는데, 뻔히 보여 뻔히. 흘겨만 지나가도 이름 석자가 뻔히 쓰여 있어. 다 알아, 누가 누구를 팔았는지, 무슨 이유에서 팔았는지. 대충 흘겨만 봐도 다 알아” –인포먼트 ‘참외’
(2) 상담관-간부-병사 관계에서의 감시 구조
병사 간의 감시 구조와 마찬가지로, 상담관-간부-병사 관계에서도 감시 구조는 존재한다. 군 상담에서 ‘상담 내용의 비밀보장’은 당연히 지켜져야 할 원칙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상담관은 채용된 직원으로서 상담 결과를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구조적 위치에 놓여 있으며, 심각한 사안이라고 판단되는 특정 경우에는 상담관이 장병의 상담 내용까지 지휘관에게 전달해야 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은 내담자인 장병들이 마음을 터놓고 상담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게 하며, 이때 군 상담 체계는 장병들에게 군 시스템의 일부로서 작동하는 감시 체제의 일환으로 인지된다.ㅍ이에 대부분의 장병들은 자신이 상담관에게 말한 내용이 결국에는 상부로 올라간다고 인식하며 비밀보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셸 푸코의 ‘판옵티콘’ 개념을 적용해본다면 이러한 감시 구조로 인해 생겨난 상담에 대한 불신은 특히 ‘중심부’의 비가시성에 의해 증폭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피감시자인 장병들에게는 자신의 상담 내용을 감시할 수 있는 감독자의 행동을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이들은 상담관이 간부에게 자신의 상담 내용을 전달하지 않더라도 이를 확인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심부의 비가시성은 “자동적이고 미시적인 권력”(김소현, 2022) 을 창출하게 되며, 이때 피감시자인 장병들은 자신을 감시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주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신이 통제되고 감시된다고 여기게 되어 상담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하여,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상담관을 먼저 찾는 행위는 ‘찌르는’ 혹은 ‘파는’ 행위라는 장병들의 인식에서도 감시 구조를 포착할 수 있었다. 누군가 상담을 받으러 가는 사실을 장병들과 간부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군대의 특성상, 장병들은 결국 섣불리 상담관을 마음 편하게 찾아갈 수 없으며, 이렇듯 군대 내부에서 만연하게 존재하며 공유되고 있는 상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상담을 찾는 장병들에게 다층적인 감시—주변 장병과 선임 간부의 시선—를 경험하게 한다.
“다 똑같은 군대 안에 있는 놈들인데 얘한테 말해도 저기 위로 올라가고 쟤한테 말해도 올라가고 […] 결국에 똑같은 데로 보고가 올라가고 어디로 하든 하나로 종결돼서 올라가.” –인포먼트 ‘포도’
“애초에 문제가 있으면 자기 선임한테 얘기해야지. 그러니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절대 간부(상담관)한테 얘기하지 말라 (…)예를 들어서 누가 누구를 혼냈어. 그러면 쪼르르 달려가서 자기 누가 좀 혼내서 힘들다. 생활이 힘들다. 이런 거 얘기하지 말라 이거야. 누가 누구를 때���다 이런 거 얘기하지 말라고.” –인포먼트 ‘참외’
푸코에 의하면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스스로 권력이 설정한 지배적 가치를 내면화하게 된다고 하는데, 본 연구의 인포먼트인 장병들 역시 처음에는 강제적으로 부여되었던 ‘상담관보다 선임 간부를 먼저 찾을 것’이라는 규칙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내면화하여 스스로 권력 구조에 예속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장병들은 자신의 개인적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 상담관을 찾기보다는 ‘규칙’대로 간부를 먼저 찾아가게 되며, ‘규칙’대로 행동하지 않고 상담관을 찾아가는 행위가 ‘조직내부의 일을 외부인인 상담관에게 유출하는(혹은 ‘파는’) 행위’로 인식될 것을 우려하는 장병들은 결국 주변의 감시를 인지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해당 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정상'과 '비정상', 그 사이의 긴장
(1)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폐급"과 "에이스"
서론에서 설명하였듯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고프만이 정의한 ‘상호작용 의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바로 이 상호작용 의례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지대(김현경, 2015)인 군대에서는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기에 ‘사람됨’을 감각하기 어려우며, 그 속에서도 ‘사람됨’을 향한 장병들의 욕구는 결국 ‘사람인 것’과 ‘사람이 아닌 것’으로 서로를 구분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폐급’과 ‘에이스’라고 불리는 집단 간의 구분으로 이어졌는데, ‘에이스’라고 불리는 병사들은 상명하복 체계를 엄격히 준수하고 좋은 선후임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띠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포먼트 ‘살구’의 경우에는 이러한 ‘에이스’의 면모를 이상적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병사의 태도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명령과 복종의 유기적인 관계 하에 군 조직이 취하고 있는 사회화 전략에 의한 결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는 곧 장병들이 군 조직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장병의 모습을 ‘정상’으로 상정하고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에이스’와 대치되는 개념은 ‘폐급’으로 정의되는데, ‘폐급’의 경우에는 군기가 없고 선임에게 복종하지 않는, 또는 누군가를 상부에 ‘찌른다’는 인식이 보편적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들은 이와 같은 부정적 인식을 통해 낙인의 대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폐급도 종류가 많지. 약간 폐급이 근무를 잘 못서는, 처음은 근무를 잘 못하는 애들. [...] 말을 안 듣는 애들. 그러니까 그냥 선후임 대접도 안 되는 애들. 그냥 선임을 선임으로 안 보고, 하극상 일으키는 애들 [...] 되게 나쁘게 말하면 군대 마인드가 안 잡히는 애들. 군기가 없는 애들. 그런 애들. 좀 종류가 다양하긴 했어.” - 인포먼트 ‘살구’
이렇듯 ‘폐급’, 즉 ‘비정상’으로 구분된 장병들은 낙인과 수용소에 대한 고프먼의 연구에 따르면 ‘배제’와 ‘조건부 통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김현경, 2015). 인포먼트 ‘참외’에 의하면 ‘조건부 통합’을 하지 못하는 ‘폐급’ 장병은 후임조차 대우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때 ‘폐급’으로 낙인 찍힌 장병은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할 때 이루어지는 ‘상호작용 의례’에서 제외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위계질서에 의해 작동하는 군 조직에서 선임으로서의 역할조차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폐급’ 장병은 군대 내부에서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게 되기 마련인데, 이와 같은 배제를 당하지 않기 위해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결국 ‘도피’ 혹은 ‘��출’이다. 인포먼트 ‘사과’에 의하면 우울증이 해결되지 않은 채 병영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장병의 경우에는 결국 의가사 전역을 함으로써 상황 자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곧 ‘조건부 통합’에 실패하여 ‘폐급’으로 낙인 찍힌 장병들이 배제를 당하거나 스스로 조직에서 탈출하는 것(그러나 그 절차는 매우 복잡하여 모두에게 가능한 선택지는 아니다)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폐급’으로 낙인 찍힌 장병들은 상부에 의해 의무적으로 여러 차례 불려가 상담을 받게 되는데, 이는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적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군 조직의 통합성과 응집성에 방해가 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일종의 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때 “정상인은 낙인을 포용하는 듯한 몸짓을 하[는데](김현경, 2015)”, 이처럼 낙인자에게 ‘정상인’인 상담자가 제멋대로 접근하여 상담을 제공하는 행위는 한편으로는 “낙인자들의 몸을 함부로 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김현경, 2015)”하며 이들과 정상인과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2) '정상성'을 획득하기 위한 침묵
본 연구진은 타자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정상’으로의 분류를 거부하는 긴장이 발생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고, ‘정상’과 ‘비정상’ 간에 존재하는 긴장 관계 속에서 ‘정상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장병들의 역동성이 역설적으로 ‘침묵’이라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는 문제인식이 존재하지만 발언으로 인한 불이익을 우려하거나 발언의 효과에 대한 체념에 의해 침묵을 택하는 ‘조직 침묵 현상(고대유, 2014)’으로, 본 연구진은 인포먼트들의 발화를 통해 군 조직에서 조직 침묵 현상이 오랜 시간 전통적으로 이어져 왔음을 포착하였다. 즉, 장병들은 누군가를 ‘찌르거나’ 동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폐급’이 되지 않기 위해 군 내부에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침묵을 유지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다음 발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냥 조용히 좋게 좋게 넘어가자’ 약간 이런 마인드가 다들 있기 때문에…” - 인포먼트 ‘석류’
이러한 가운데, 발언을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인식에서 기인하는 ‘체념적 침묵(고대유, 2014)’ 과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및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방어적 침묵(고대유, 2014)’ 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후자의 경우에는 개인에게 돌아올 불이익에 대한 우려와 함께 동료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함께 존재한다. 인포먼트 ‘레몬’은 군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군대는 곳곳을 “헤집어서” 문제를 파악한다고 언급하였는데, 이처럼 떠들썩하게 진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동료들 혹은 선임 간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일과에서 제외되어 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 역시 단체 생활을 중시하는 군에서는 자칫하면 이기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데, 그 몫이 동료들에게 돌아가 피해가 된다는 비난을 원치 않는 장병들은 자연스럽게 개인적 어려움에 대하여 침묵하기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두 유형의 침묵 모두 ‘불공정한 조직 상황이나 조직 침묵을 유도하는 조직 문화(고대유, 2014)’로부터 비롯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군대는 수직적으로 계층화되어 있으며 의사결정권이 지휘관에게 집중되어 있는 조직(김태형, 2016)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러한 조직적 특성에 더하여 '군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 '그 정도는 참고 살아야 된다' 등의 사회적 인식이 깊이 자리하고 있는 군 지휘부(김형남, 2022)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병사들이 어떠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병사들의 주체성 획득을 위한 시도
(1) 또래 상담병
이처럼 장병들에게는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확인되는데, 상담관을 통해 군 상담을 받는 과정(혹은 받으러 가는 과정)에서 ‘사람됨’을 감각할 수 없었던 이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람됨’을 감각하고 주체성을 획득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또래상담병 제도’는 군의 수직적인 조직체계로 인해 “자유로운 대화와 평등한 관계가 기본철학이 되는 일반 상담의 원리(���미진 외, 2009)”가 적용되기 어려운 일반 군 상담의 중요한 대안(양미진 외, 2009)으로 도입되었는데, 바로 이러한 제도를 통해 장병들이 경직된 군 조직체계 속에서 주체성을 획득하고자 했던 것이다. 의무적인 군 상담과 달리 또래 상담병의 경우 장병들의 참여적 의사결정을 통해 또래 상담병을 주체적으로 투표하고 선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처음으로 장병들이 자신의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에 대하여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특히 유의미하다.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에 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인포먼트 ‘멜론’의 경우에도 “또래 상담 같은 경우에는 진짜 괜찮았다”라고 평가하였으며, 인포먼트 ‘석류’와 ‘참외’ 역시 기록이 남지 않고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또래 상담을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즉, 이를 통해 장병들이 자신의 의사결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또래상담을 의무적인 군 상담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인식하기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또래 상담병으로 활동했던 인포먼트 ‘석류’와 ‘사과’의 경우 체계화되지 않은 ‘또래상담병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직접 체계를 만들어가며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던 경험에 대하여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컨대 인포먼트 ‘사과’는 장병들의 상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상담실을 평소에도 오픈하여 상담관이 자리를 비웠을 때에도 장병들이 또래 상담병과 함께 상담실에서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를 계획하였고, 비록 해당 프로젝트가 오랜 시간 지속되지는 못했어도 이처럼 또래 상담병이 자율적으로 상담 환경을 조정하거나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은 또래 상담병에게 일정 수준의 주체성과 효능감을 부여한 것으로 보였다.
한편, ‘또래상담병 제도’ 역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상술하였듯 장병들이 또래 상담병을 ‘cctv병’으로 인지하는 등의 부정적 인식에 더하여 장병들은 자신들의 참여적 의사결정을 통해 선발되지 않은 상담병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또래상담병 제도’의 운영은 부대마다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또래상담병 선정에 있어 선임이 마음에 드는 후임에게 또래상담병 자리를 물려주거나(인포먼트 ‘리치’) 간부들이 또래상담병을 선정한 경우에는 조직공정성(김진아, 2014)이 낮게 평가되어 해당 제도가 ‘부조리’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또래상담병의 기록과 보고를 의무화하는 등의 기존 상담 체계로의 편입 역시 장병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어렵게 하였는데, 이는 ‘또래상담병 제도’가 결국 ‘휴가를 얻기 위해’ 혹은 ‘상담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명목상 존재하는 제도라고 인식되게 했다. 또한, 해당 제도는 군대의 계급사회 특성상 후임 장병들이 선임인 또래 상담병에게 마음 편히 찾아가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점 또한 지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취지 자체가 상담을 해주라고 만든 건데, (상담거리가) 없을 수도 있잖아. 근데 무조건 적어야 돼. 무조건 할당량이 있어. 그 양만큼 채워야 해.”- 인포먼트 ‘살구'
“아무리 (상담병이) 착해보이고 친절하게 해줘도 아무래도 군대는 계급사회다 보니까 병장 정도 되는 사람한테는 쉽게 그러기 힘들거란 말이지.”-인포먼트 ‘사과’
(2) 선후임, 동기끼리의 상담
결국 제도화된 군 상담과 또래 상담에는 다양한 한계가 필연적으로 존재하는데, 이로 인해 병사들은 형식화된 상담제도보다는 오히려 친한 선후임 사이나 동기끼리의 비형식적인 상담 및 대화를 통해 결속력을 느끼고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조직에서 부여된 역할과 의무의 수행을 넘어선 자발적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조직에 속한 동료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주고, 협동하며, 봉사하는 활동(신금석, 2012)”, 즉 ‘조직시민행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본 연구의 인포먼트 ‘살구’는 우울감으로 인해 필수적인 활동을 제외하고는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대화를 단절한 채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인포먼트 ‘살구’에 의하면 그는 선임의 자발적이자 순수한 선의에서 비롯된 ‘조직시민행동’을 통해 비로소 우울감에서 벗어나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 장소, 환대』에서 김현경은 “사회를 이루는 것은 사람들이며, 그들 각자는 타자를 사회적 죽음으로부터 끌어내는 힘을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다(김현경, 2015)”고 하였는데, 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동료를 위해 나서고 도움을 주는 장병들의 조직시민행동이 그들의 동료를 ‘죽어있는 존재’에서 미약하게나마 ‘살아있는 존재’로 승격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선후임 혹은 동기들과 일상적인 차원에서 서로 고민을 공유하고 사회적 지지를 주고받는 경험을 통해 장병들은 고프만이 정의한 서로가 사람임을 인정하는 상호작용 의례(Goffman, Erving, 1983)를 수행할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장병들은 군대 내에서도 ‘사람됨’을 감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너무 무료하기도 하고, ‘이거를 거진 1년을 더 해야 돼?’라는 생각이 너무 큰 거야. 휴가도 못 나갔었고. 그래서 막 현타가 와서 진짜 근무 외에 아무것도 안 했거든. 그때 진짜 생활관에 누워만 있었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고, 점호받으면 점호받고, 바로 자고. [...] 힘든 거 있냐고 나를 먼저 알아봐줬어. 그래서 그냥 이 시기쯤 되니까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이러니까 그 사람도 그랬다는 거야.[...]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고 그 이후로 좀 많이 풀렸었어.[...] 그래서 그때 이후로 그 사람이랑 운동도 좀 같이 했었어. 나보고 “운동 같이 할래?” 이래서 운동도 좀 해보고, 같이 떠들어 보고, 그 사람이 좀 도움이 많이 됐지. […] 그래서 그때 좀 느꼈어. 선후임 관계가 중요하구나 그런 상담 받을 수 있는 관계.”-인포먼트 ‘살구’
5.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한 상담
제도화된 군 상담의 한계와 이에 대하여 장병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인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의 인포먼트들은 심층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공통적으로 ‘군 상담’ 제도는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말을 맺고는 했다. 이에 대한 인포먼트들의 발화를 종합해보면, 그럼에도 군 상담 제도가 필요한 ���유는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압축된다.
첫째, 진정한 의미의 ‘상호작용 의례’가 작용하지 않는 군 조직의 현실에서 군 장병들은 ‘사람됨’을 갈망하게 되는데, 군 상담은 장병들의 ‘사람됨’에 대한 욕구를 충족해줄 수 있는 유의미한 수단으로서 작용한다. 군 상담은 군 장병 개개인의 차원에서 의사소통의 창구로 작용하여 이들이 감각하는 조직공정성 및 효능감 등을 향상시키고, 더 나아가 군대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의례’를 형식적으로라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사람됨’의 감각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의미한 수단이 된다. 즉, 군 상담제도는 서로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상호작용 의례’의 기능을 일부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며, 이에 따라 군 상담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병들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인포먼트 ‘라임’과 ‘리치’는 경직된 군대 내에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군 상담의 가장 큰 가치이자 안정감을 주는 요소라고 설명했는데, 여기서 ‘자기 얘기’는 ‘자유로운’ 상호작용의 개념을 내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계급이라는 불가피한 요인으로 인해,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가 전제되는 군 간부와의 상담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반면, 민간인 병영생활 전문상담관과의 ‘군 상담’은 수평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상호작용 의례’에 한층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군 장병들은 병영생활 전문상담관과의 상담을 통해서 ‘상호작용 의례’를 일정 부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사람됨’의 욕구를 어느정도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군 상담은 장병들이 처한 문제나 위급 상황에서 장병들의 내적 욕구, 혹은 고민들을 다루고 해소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군 상담은 장병들이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수단이자 안전장치로서 작용하며, 인포먼트 ‘거봉’, ‘체리’, ‘자두’ 등의 장병들이 군 상담을 통해 실질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고 언급한 지점에서 군 상담이 지니는 가치는 상당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군 상담을 최악의 상황에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에어백’, 혹은 상황 자체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탈출구’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는 군 상담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장병들이 안도감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 상담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옛날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고 하면, 옛날에 막 육군 보면 막 휴가 나가서 그냥 모텔 가가지고 자살하는 사람들 많았잖아. 그게 이제 구멍이 없었던 거야. 근데 이제 탈출할 수 있는 구멍이 있는 거야.” - 인포먼트 체리
종합하자면, 결국 ‘군 상담’은 ‘상호작용의례’의 역할을 (표면적이더라도) 수행함으로써 군 장병들의 ‘사람됨’에 대한 욕구를 어느정도 실현해주고 있다는 것이며, 군생활 측면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군 장병들의 내적 고민과 욕구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등, 정신적인 측면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III. 결론
본 연구는 국가에 의해 성원권이 벗겨진 채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 된 군인들이 민간인과 동등한 인격체이자 행위자로서 ‘사람됨’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된 이들의 주체성을 향한 욕구에 주목한다. 앞서 언급한 여러 발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가와 사회적 제도에 의해 인격을 부정당하고 존엄성을 위협받게 된 이들은 ‘사람됨'을 인정받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와 제도가 규정하는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고자 고군분투하는데, 이러한 긴장과 더불어 다수의 군인들이 의무적인 군 상담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어쩌면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김현경, 2015) 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려고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인정과 더불어,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됨'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정의하고 실현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즉, 본 기술지에서 말하는 ‘사람됨'은 사회적 인정과 함께 개인의 주체성이 보장되는 것에 대한 논의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군인들이 군 상담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상담이 필요하다며 결론짓는 모순적인 현상은 결국 ‘사람됨'을 갈망하는 이들의 마음을 반증하고 있다. 즉, 여전히 국가의 ‘소모품'으로 군인들을 대하며 통제에서 벗어난 이들을 ‘낙오자'로 간주하는 군 상담의 실제를 목격한 장병들은 ‘사람됨'이 실현될 수 없음에 절망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럼에도 상호작용을 통해 상대방을 ‘사람’으로 봐주는 듯한(설령 그것이 시늉일 뿐이더라도) 군 상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수 없기에 군 상담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 상담과 장병들의 군 생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람됨’과 주체성을 향한 장병들의 욕구를 바탕으로 군의 전반적인 상담 환경을 점검하고 체계화하는 노력—병영생활 전문상담관에 대한 접근성 및 신뢰성의 문제, 상담의 비밀보장과 감시 체제에 대한 문제, 명���상 존재하는 또래 상담병 제도의 문제 등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특히 자신의 복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는 장병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자기를 위해 나서주는 제삼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벌거벗은 생명은 아직 완전히 벌거벗은 게 아니다”(김현경, 2015) 라고 하였는데, 형식적인 차원에서 “낙인자를 포용하는 듯한”(김현경, 2015) 상담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상대방을 대하여 내담자가 자신을 타인과 동등한 사람으로서 감각하게 하는 상담이 이루어진다면, ‘벌거벗은 생명’이자 ‘사회적 죽음’에 놓여있던 장병들이 다시금 생명력을 회복하고 ‘사회적 죽음’에서 벗어나는 기적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IV.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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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다혜, 이세아, 이준성, 조민엽, 홍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