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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타임: 기회와 변화의 시간 대학 스포츠 선수들의 정체성과 대학의 의미를 중심으로

왜 대학 스포츠선수에 주목하는가?

대학 스포츠선수에 대한 본 연구는 대학 스포츠선수와 관련되어 과거부터 지적된 여러 문제에 대해서 선수들 인식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존의 연구는 외부의 시각에서 대학 스포츠선수들을 엘리트 선수로 조망하고, 과학적, 의학적 접근방식을 통해 선수들이 경기에서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뤘습니다. 최근에 와서 그들이 인지하고 있는 정체성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학 내 성적의 향상, 학습 성과 등 주로 교육학 분야에서 초점을 맞춰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대학 스포츠선수들이 그들 스스로를 어떻게 인지하고,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정체성의 충돌 혹은 혼란 등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 이 연구는 앞서 언급된 신체학적, 교육학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적 제시의 측면이 아닌, 사람 그 자체로서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을 목적으로 합니다.

본 연구는 신문규의 연구(2016)에서 확장되어, 연구자들이 속해 있는 대학교 내부에 대한 인식의 확장에서 비롯됩니다. 대학 스포츠선수들이 ‘스포츠선수’라는 신분과 더불어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동시에 향유하면서 어떻게 집단 내부에서 이에 대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공유하며, 향유하는지에 대해 주목합니다. 대학 스포츠선수는 대학이라는 장(場)에서 그들이 경험하며 획득할 수 있는 자본과 이에서 비롯된 정체성이 본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며, 모색하는지를 살피고자 합니다.

요컨대, 이 연구는 ‘대학 스포츠선수는 누구이고,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어, 대학 축구선수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함께 살피고, 제도적, 환경적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그럼에도 이에 대해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그들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도전과 더불어,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대학 축구선수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연구 방법

본 연구는 대학 스포츠선수들 중 ‘연세대학교 축구부’를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연세대학교 축구부는 1학년 8명, 2학년 8명, 3학년 6명, 4학년 2명으로 총 24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그 중에서 축구부 학생 5명과 축구부 프런트 학생 2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축구부 훈련과 경기를 참여관찰하였습니다. 연세대학교 축구부의 훈련은 연세대학교 대운동장에서 금요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었으며 금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U-리그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연구를 진행하며 연구 대상을 연세대학교 스포츠 선수에서 연세대학교 축구부 선수들로 보다 구체화하였으며, '축구'라는 스포츠의 특징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대학 (그리고) 축구선수의 삶

학생되기

“평소엔 (학업 이야기) 잘 안 하고 저도 과제 같은 게 있을 때만 이야기를 좀 하는 편이에요.” (…) “저는 좀 더 운동에 집중하고 싶은데요. 운동하고 수업 들으면 너무 피곤해요.” (인포먼트 E)

이러한 인터뷰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대학 축구선수들은 어려서부터 굳게 다져온 운동선수 정체성과 운동선수 생활이 이미 매우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구조(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대학생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이 이들에게는 과제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감각하는 일종의 비일상적인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선수가 아닌 대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은 하나의 반구조(커뮤니타스)적인 경험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선수되기

“휴가 때나 그럴 때는 이제 계획 없이 사는데 이게 뭔가 허전하다고 해야 하나.. 제가 지금 정해진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그런(계획표 같은) 게 없을 때 좀 더 불편한 느낌이 들어요.” (인포먼트 B)

이들에게는 어느새 기숙사 생활을 하며 규칙적인 훈련 일정에 맞추어 사는 운동선수로서의 삶이 본인들에게는 매우 일상적인 삶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인포먼트 B에게는 이러한 상태가 본인의 구조로 자리 잡음에 따라 오히려 규칙과 통제에 벗어나는 삶을 더욱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앞서 살펴본 부분이 운동선수 생활 전반의 측면에서 작용하는 구조였다면 이러한 구조 내에서 또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축구부 선수 생활이라는 구조가 유지되는 하나의 ‘질서’로 작용하며 구조 내의 위계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축구부 내의 ‘군기’입니다. 폐쇄적인 특징의 구조하에 군기는 공동체 내에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규칙으로 자리합니다.

“경기장에서는 선후배 신경 안 쓰고 다 편하게 말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경기 끝나면 다시 다들 존댓말 쓰고 그래요. 근데 이제 감독님이랑 코치님이 지켜보고 계시니까 그게 눈치가 보이죠. 경기하다 실수하면 한 번씩 봐요.” (인포먼트 A)

신문규(2016)의 연구에서 중랑축구단이 감독과 코치 그리고 선수 모두가 수평적인 관계로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였다고 언급한 것과는 달리, 이들은 감독, 코치와의 관계에서는 경기 내에서도 여전히 위계가 남아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프로 진출이라는 목표의 마지막 기로에 서있는 대학 축구선수에게서만 드러나는 독특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학 축구선수가 축구경기를 한다는 것은 신체적으로 그들에게 매우 일상적인 경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확인하였듯이 그들이 경기를 준비하고 경기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의례의 형태가 드러남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수직적인 체계가 선수들 사이에서는 수평적 관계로 변화하는 등의 변이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경기를 하는 과정이 그들에게는 반구조적인 시공간으로써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학생 + 선수 되기

“진짜 다른 경기에선 누가 골 넣어도 그냥 '아, 좋다' 이 정도인데 연고전은 힘들어도 골 넣으면 이제 다 달려와서 같이 기뻐해줘요.” (인포먼트 D)

연고전은 일반적인 경기와는 사뭇 다르며, 정기전의 성적과 결과는 리그나 협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하나의 연례 일정 중 가장 큰 이벤트로 여기고 있으며, 단 하루를 위해, 수개월 전부터 의례를 준비하게 됩니다. 천연 잔디인 주 경기장에 맞춰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파주의 트레이닝 센터에 가서, 경기 당일 앰프 소리와 함성 소리에 대비해 훈련장 주변에 앰프를 설치해 두고, 상대 학교와 본 학교의 응원가를 틀어 두고 집중훈련에 들어갑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정기전에 임하는 자세는 더욱 달라집니다. 실제로 저학년(1,2학년)의 경우엔 기대되고, 가슴 뛰는 경기라고 인식하고 있는 반면, 고학년(3,4학년)에겐 "죽어도 질 수 없는" 경기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들이 대학생활을 하며 획득한 라이벌 자본으로써 정기전은 하나의 관문, 의례로서 성취를 이뤄내야만 하는 반구조의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떠나야 하는 곳, 대학

대학이 1차 목표인 프로 진출에 대한 대안에 가깝다는 사실에서 대학에서의 삶은 개인의 욕망 또는 기대와 어긋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어긋남의 반복은 개인에게 대학이 1차적 목표가 아니었음을, 그리하여 가능하면 빨리 벗어나야 하는 공간임을 상기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 축구선수들이 대학을 “떠나고 싶은” 혹은 “떠나야 하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는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프로를 위한 발판

대학 진학을 '인생의 전환' 정도로 여기는 여타 비운동부 학생들과는 달리, 대학 축구선수들에게 대학 진학은 "축구 인생의 연장선"입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하기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수들은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 본인이 뛸 수 있는 팀을 구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합니다. 따라 대학 생활 또한 선수로서의 훈련과 경기가 최우선입니다. 모든 일상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대학 리그 경기에 맞추어져 있으며, 선수들은 이와 같은 생활을 이전과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대체로 봤을 때 한 3분의 1은 프로에 가고, 3분의 1은 그만두고, 3분의 1은 4학년까지 학교 다니다가 졸업한 다음에 프로는 아니더라도 세미프로 K3, K4 같은 데 가거나 아니면 졸업하고 그만두거나 이런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근데 점점 갈수록 프로 가는 인원들이 줄어들고 있고.” (인포먼트 F1)

대학무대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추세 또한 떠나야 한다는 감각을 증가시킵니다. 과거 대학 축구선수들은 대학 4년을 마치고 졸업을 해도 프로에 갈 수 있었으며 따라서 뛰어난 인재가 대학에도 많이 포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K리그에서 만 22세 이하 선수 1명을 의무 선발하는 'U-22룰'과 같은 제도의 영향으로, 재능이 있는 선수들은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에 프로에 가거나 프로에 가지 못하는 경우에도 K3, K4의 하위 팀에서 경험을 쌓고자 하는 경향이 높아졌습니다. 프로 팀 또한 앞으로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여 어린 선수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학 축구선수들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주변 동기들이 하나둘씩 프로에 진출할수록 압박감을 느끼게 되며, 3학년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하여 프로에 진출하고자, 즉 대학에서 떠나고자 결심합니다.

학업 병행의 어려움

본래 대학 리그는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선수로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대학 스포츠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실상 대학 축구선수는 운동과 수업을 병행하는 데에 있어 갖은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이들이 마주하는 어려움은 주로 수업의 난이도,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데에서 비롯된 체력적 한계, 수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그냥 진짜 수업을 듣는 느낌이 그냥 수업을 보고 배운다는 느낌을 그냥 수업 들으러 굳이 가서 뭔가 기초를 알려주고 공부를 가르치시는 게 아니라 그냥 가르치시는 거니까. 하나하나 일일이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또 중고등학교 때 알려주시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솔직히 거기서는 수업을 제가 잘 못 따라갔던 것 같아요” (인포먼트 C)

대학 축구 리그의 한계

“일단 U리그는 관중이 많이 안오잖아요.“ (인포먼트 A)

대학 축구 리그가 지니는 한계는 이들이 대학을 떠나야 하는 곳으로서 인식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인터뷰 중 대학 축구 리그의 한계점에 대해 공통적으로 언급된 바는 바로 관중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관중은 대학 축구 리그만의 문제점에서 나아가 대학 리그가 지니는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농구나 배구 종목을 제외하고, U리그에 참가하는 다수한 학교들은 학교운동장이 없거나 요건을 만족하지 못하여 공설운동장 등 외부 시설에서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며 이로 인해 자연스레 일반 학생들의 관심도가 떨어지고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수가 적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관중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차원에서 경기장으로의 접근 가능성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더불어, 대학 축구 리그를 홍보할 수 있는 단체에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연세대학교 축구부 프런트의 경우, 경기에 동행하고 이를 홍보하는 데에 쓰일 자료를 제작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금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고정적인 팬층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홍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프로라는 꿈

대학 축구선수에게 있어 대학은 축구선수로서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선택지이자 궁극적으로 프로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서 존재합니다. 프로 진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대학 축구선수는 개인 커리어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이 때 예기치 못한 '부상'은 개인 커리어의 단절과 공백을 야기하는 요소가 됩니다. 부상은 단절과 공백을 유발하는 요인으로서 선수에게 위기를 제공하지만 때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특성에서 역동성을 지닙니다.

개인 커리어의 중요성

축구는 팀플레이로 이루어지는 스포츠인만큼, 팀이 승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목적으로 여겨집니다. 여타 단체 운동처럼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두드러짐보다 협력, 조화, 배려와 같은 덕목이 중요시되며, 해당 과정에서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 순간도 분명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대학 축구 선수에게 있어서 때론 팀의 목표와 성공보다 개인의 퍼포먼스가 우선시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프로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으로서 자신이 두드러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경기 중 팀의 퍼포먼스나 경기의 흐름에 차질을 일으키더라도 자신의 개인적인 역량을 발휘하고자 하기도 합니다. 이는 특히 프로 축구 구단의 스카우터를 비롯하여 프로 관계자들이 참관하는 경기에서 더욱이 두드러지는 경향입니다. 개인의 성공과 팀의 성공이 별개의 지향점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때론 개인의 두드러짐을 위한 선택을 함으로써 프로에 진출하고자 하는 열망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단절과 공백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은 대학 축구선수로서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는 프로 구단에서 어린 선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프로 진출은 대학교 3학년을 마치기 전에 결정된다고 인식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조급함을 심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은 곧 개인 커리어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는 경기에서 성과를 내야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경기를 출전할 수 있을 때의 고려사항입니다. 따라서 커리어의 단절은 선수 개인이 경험하는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선수들은 학년별로 출전 기회가 상이하게 주어지는 것에 대해 당시의 고통스러움을 토로했지만, 한편으로 이는 같은 동급생 축구부원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이며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룰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대학 축구 선수는 감독의 재량, 학년의 한계로 인해 출전 기회에 제한을 받을 뿐 아니라 부상으로 인한 공백과 단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상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현듯 찾아와 선수들이 출전기회를 포기하게 만드는 위험요소입니다.

기회로서의 부상

부상은 ���수생활의 단절과 공백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대학 축구선수의 선수로서의 정체성에 위협을 가합니다. 이처럼 부상은 선수 커리어를 쌓는 데에 있어 방해요소이자 위험요소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대학 축구선수에게 있어 부상장애물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때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는 역동성을 지닙니다.

대학 축구선수가 경험하는 부상이 역동성을 지니는 것은 부상이 곧 선수 생활의 단절과 공백을 야기하여 선수로서의 정체성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복귀 직후까지 이어지는 신체적 변화와 그에 따른 심리적 변화가 곧 선수가 온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상은 위험요소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동일 포지션에 있는 동료의 부상은 곧 자신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옵니다. 이에 더불어, 부상은 선수 생활에 또 다른 공백을 야기할 수 있는 군복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작용하며 이를 해결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기회의 장'이 되는 대학

대학 축구선수들은 프로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가능한 한 빨리 대학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이들은 대학 생활에서 다양한 기회를 만들고 능동적으로 의미를 창출해 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대학 축구선수들은 상황에 따라 대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면모를 보입니다. 이들은 프로에 진출한 주변 친구들과 본인을 비교하며 대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이 있기에 현재 대학생 시기를 '즐길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합니다. 한편, 대학 내에서는 "일반 학생"과 구분되는 "운동부 선수"로 위치시킴으로써 자아를 구성합니다.

대학 축구선수들이 대학생으로서 포착한 기회 중 하나는 '사회적 교류'입니다. 폐쇄적인 운동부 집단의 특성상 엘리트 생활을 지속해 온 선수들은 다른 일반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운동부 이외의 관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대학에 온 후에도, 선수들은 같은 학년 축구부 동기들과 함께 시간표를 짜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냅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지점은 이들이 전공이나 교양 수업에서 일반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과 선수 본인이 일반 학생들과 친해지고자 하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축구할 때는 달라진 건 없는데. 일상생활이 많이 달라졌어요. 공부를 많이 해야 되고. 친구. 일반 학생들이랑 친해질 기회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서.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는 반에 야구부랑 다 운동부였는데 여기 오니까 수업 들을 때 거의 다 일반 학생들. 일반 학생들도 운동부들 좋아해줘서 친해졌고.” (인포먼트 B)

체육계열 전공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선수들은 같은 전공 수업을 듣는 일반 학생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선수들은 대학 생활에서 해보고 싶은 것으로 동아리 활동을 꼽았는데, 더 많은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일반 학생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인맥", "똑똑한 친구"가 생기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이들이 일반 학생과의 교류를 사회적 자본으로 인지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선수 생활로 인해서 원하는 정도의 사회적 교류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들은 학교 축제 등의 이벤트를 최대한 ���용하며 일반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이어나갑니다. 이는 집단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대학 축구선수들이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일반 학생들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시야를 넓히며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일반 학생들과의 교류는 선수 생활 중단 이후 진로를 재설정할 때도 도움이 되며 선수들 또한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포착한 기회는 '진로의 확장'입니다. 프로 진출의 대안으로 대학에 오게 되었지만, 선수들은 대학 시기를 프로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습니다. 프로 진출 전의 선수들에게 대학은 프로에서의 가능성과 본인의 다양한 기술들을 실험할 수 있는 장이 됩니다. 또한 대학은 선수 생활 중단 이후의 경로를 재설정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대학에서 프로를 준비하는 선수들은 개인이 아닌 팀에게 맞춘 전술을 익히며 팀에 녹아들게 됩니다. 개인의 기량이 팀의 성과로 이어졌던 중고교 시절과 달리 대학이나 프로는 "선수 한 명 한 명이 치열"하기 때문에 팀플레이의 중요성이 커지게 됩니다. 중고교 시절에는 주로 본인의 개인적인 기술을 연마하고 발휘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대학에 들어온 선수들은 팀의 전술에 맞춰서 플레이하는 법을 훈련합니다. 또한 선수들은 대학 무대를 통해 본인에게 적합한 포지션을 시험합니다. 프로에서는 "용병"이라고 불리는 외국인 선수의 포지션이 확실하게 있기에, 본인이 해당 포지션으로 경쟁력이 없으면 기회를 받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대학 축구선수들은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포지션을 찾아 나서고, 그 자리에서 돋보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합니다.

대학은 프로 진출 이외의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연세대학교가 종합대학임을 고려하면 학생으로서 선수들에게는 훨씬 다채로운 경험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현실적으로 프로에 진출하지 못할 가능성을 감지하고 있는 선수들은 많은 경우 지도자의 길을 생각하지만, 전공 수업을 들으며 다른 진로를 인식하기도 합니다. 또한 명문 사립 대학의 평판을 지니고 있는 연세대학교의 특수성은 선수 생활 중단 후의 생활 및 진로에 관한 고민을 한층 수월하게 느끼도록 했습니다. 또한 선수 생활을 중단하기로 한 인포먼트는 체육교육과로서 교원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음을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1차적으론 교원 자격증을 따고 졸업하는 것이 목표예요. 그리고 그냥 할 수 있는 것 다하자. 예를 들어서 중간중간 자격증도 따고 아버지 하시는 일 관련된 자격증도 따라고 하셔서, 그것도 따고, 지도자 자격증도 따면서 못해본 것도 좀 해보면서, 대학생활을 해보면서 살고 싶어요.” (인포먼트 D)

체육교육과가 아닌 다른 선수는 선수 생활 중단 이후 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가는 경로를 고려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선수들에게 대학은 프로라는 꿈이 좌절되었을 때의 대안적인 탐색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으로 일종의 안전망이 됩니다.

대학 축구선수들은 프로에 진출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개인플레이를 하고, 경기에 선발되��� 못한 날에는 팀의 승패에 상관없이 아쉬움을 갖기도 하지만 대학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수한 경기 경험은 선수들에게 공동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연고전에서는 누군가 골을 넣으면 힘들어도 모두가 달려와 기뻐하고, 경기를 뛰지 못해도 마음을 졸이며 벤치에서 응원합니다. 경기에서 뛰지 못한다는 사실은 보통의 경우에 좌절감을 일으키지만 이때는 다릅니다. 경기의 무게감이 다르기에 교체 선수로도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실수에 대해 엄청난 압박감을 받습니다. 이는 모두 팀의 승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모든 압박감을 버텨내고 승리를 거둔 선수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함께 손을 잡고 3만 명의 관중 앞에서 세리머니를 외칩니다.

이들이 공동체로 기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물리적 환경을 포함한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우선 준비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수들은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며 준비 과정에 있어 각자의 역할을 찾아 나섭니다. 훈련은 고학년의 선발 선수들을 위주로 진행되지만, 신입생 선수들은 "형들 물 갖다 주고 공 밖으로 나가면 빨리 주워 오고" 하는 식으로 훈련의 원활한 진행을 돕습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거친 경기에는 모든 선수의 공헌이 있다고 감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소속감입니다. 이때 소속감은 축구부라는 집단뿐만 아니라 연세대학교라는 더 큰 범위에서 작용합니다. 연세대학교의 학생들은 연세대학교 축구부를 응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로 축구 경기의 팬 혹은 관중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선수들은 같은 학교의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경기를 지켜보는 일반 학생들과 긴밀히 연결됩니다. 상대 팀과 상대 팀을 응원하는 관중의 존재 또한 소속감을 더욱 자극합니다. 선수들은 자신의 특기, 즉 축구에 혼신의 힘을 다함으로써 학생들의 호응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나는 진짜로 개인적인 성공을 하고 싶은데 뭔가 마음이 또 팀에 있는 것 같아 (...) 지금 아직까지는 선발로 뛰고 그러면 보여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크거든. 근데 그 생각을 하다가도 이제 팀이 이겨야 된다라는 생각이 갈수록 더 들지.” (인포먼트 C)

선수들은 개인과 팀 커리어 사이에서 미묘한 갈등을 겪으며 때론 개인을 우선시하기도 하지만, 연고전과 같은 경험을 통해 동시에 팀으로서 활약하는 것 또한 함께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의 축적은 팀원들을 믿고 뛰는 것, 함께 팀의 승리를 만들어나가는 것, 결국에는 '팀의 성공' 속에서 '개인의 성공'을 좇는 것을 목표로 하여 따로 또 같이 꿈을 이어나가도록 이끕니다.

이처럼 대학 축구선수들은 선수와 학생의 정체성을 넘나들며 떠나고 싶은 대학에서 이들 나름대로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생활 속에서 선수들이 겪는 복합적인 긴장과 불안은 개인적인 분투가 아닌, 제도적인 개선의 선행으로 완화될 수 있음을 짚어내고자 합니다. 대학 리그가 본래의 취지대로 선수로서의 성장과 학습권 보장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재고해야 합니다. 또한 대학 생활이 선수 생활 중단에 대한 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을 만한 경로를 제공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기���이 확보되었을 때, 대학은 그 자체로 대학 스포츠 선수들에게 의미를 줄 수 있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대학 시기는 대학 스포츠 선수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기회를 잡고 변화를 맞이할 수 있는 시기, 즉 축구 경기의 '하프-타임'과 같은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연구는 송재영, 김윤지, 류서영, 최민준이 함께하였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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